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 시대다. 그 말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안정을 못 느끼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불안정을 느낀다. 내가 생각한 기대에 어긋난 타인의 평가와 관계의 질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내가 거스르고 자를 수 없는 가족관계 안에 있으면 더 그렇다.
그래서 최근에 이런 감정과 마음을 다룬 프로그램과 특강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이효리랑 엄마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화려하고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셀럽이 엄마와 풀지 못한 상처 때문에 그 앞에 한없이 무너지고 울고 있는 모습은 세상의 영화가 채워 주지 못하는 근원적 결핍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까웠다. 이 여행 속에서 얼마나 많은 화해와 관계 회복이 이루어질까 하는 것은 보는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 볼 때부터 비관적이었다. 내 경험 중심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나의 상처 회복이 앞선 관계 회복의 시도는 이렇게 여행 한 번으로 짜잔~ 마술처럼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많이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 심리학
나 역시 수십 년 동안 시도했던 노력이고 수없이 실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 공부도 여기에 한몫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심리학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탓은 정리되지 못한 나의 마음과 정리하고 싶은 내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소망 때문일 것이다. 집청소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의지와 청소 도구만 있으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이라면 참 좋을 텐데 관계 개선은 그렇게 되지 않으니 절망적이다. 나는 학위를 받을 만큼의 길고 깊은 공부를 한 심리학도가 아니라서 섣부른 판단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공부한 분야의 지식들은 양날의 검처럼 다가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그렇게 이해할수록 타인이 한 그 행위로 내가 이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힘들기도 했다.
‘나’에게서 벗어난 심리학이 주는 효용
‘나’를 들여다보는 심리학 공부를 할 때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눈을 돌려 내가 회복하고 싶은 ‘상대’를 더 들여다보는 심리학 공부를 하면 또 다른 장면이 다가온다. 내 상처에 함몰되어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그 상처를 준 사람이 너무 밉다. 그리고 그 상처로 현재의 내가 영향받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되새김질되면서 아프다. 결국 회복을 위한 심리학 공부가 더 큰 짐을 쿵 하고 내 등에 지워버린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그 상처 위에 딛고 올라가 더 이상 내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그 ‘상대’에 나보다 ‘더’ 많은 집중을 하면 내가 그(또는 그녀)를 ‘용서’ 해야 하는 과제 같은 짐이 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긍휼’이 생기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기적(?) 같은 이야기의 실현
내가 그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 관계 속 상처가 내 인생 가장 큰 에베레스트 같은 산이 되어 삶의 한 걸음도 나가게 하지 못했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내 상처가 가장 크고 내 상처가 가장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를 하며 나를 잠시 내려놓고 엄마를 생각해 봤다. 짧게가 아니라 초인적인 자에 기대에 나의 의지와 믿음을 총 발휘하여 영혼 끝까지 엄마를, 엄마 인생을, 엄마와 나의 관계를 되새김질해봤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절대 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때서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내 상처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상처가 보였다. 내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모질게 했던 말들, 반항했던 행동들,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의식에서부터 끌어와 만들었던 기괴한 엄마의 모습들.. 이런 것들이 영화 필름처럼 선명하게 보이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처음이었다. 내가 아프고 억울하고 공감과 사랑받지 못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안되게 느껴져서 눈물 나는 것,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사실은 가해자였다는 것.
‘온 세상을 노래해 ‘ 책과 그림이 말하는 것들
‘온 세상을 노래해 ‘는 이런 시선에 도움을 주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속에는 요즘 미디어들이 그렇게나 강조하고 중요하다고 말하는 ’나‘에 대한 관심과 설명은 아주 아주 작다. 대신 내가 어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지 묘사해 준다.
때로는 내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이름 불러주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읽는 이들이 당혹해 할 수도 있다. 옥수수 껍질, 아침 햇살 빛나던 하늘, 큰길, 작은 길, 둥지, 저녁밤 냄새, 기다란 그림자,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것.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이고 우리 모두라고 말해주는 이 그림책이 나에 대해 전혀 분석하고 공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더 큰 위로와 따뜻함을 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