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멕켄지 Nov 21. 2022

김밥 옆구리를 아들에게 보이지 마세요

육아 보편성의 위로

아들과 함께 소아과를 갔다. 그 건물 1층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김밥 파는 가게가 있다. 다른 김밥집들보다 조금 더 비싼 프리미엄 김밥집이긴 했지만 아이들 먹기에 간도 세지 않고 어린이 김밥도 있어 병원 진료 잘 보고 나면 보상 아닌 보상으로 김밥을 먹고 가거나 테이크 아웃해 가곤 했다. 덕분에 그 후로 아이를 병원 데리고 가는 일이 수월해졌다.  


이제는 아기 의자가 필수가 아닌 옵션이 되어 네 살 아들 녀석이랑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서 차를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초보맘은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언제든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나이인지랑 늘 불안 불안한 외출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 날 아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김밥 옆구리.


김밥 만드신 분이 유독 아들 김밥을 자를 때 칼질이 잘 안 되었는지 김밥 김이 슬근슬근 겨우 밀려서 잘려 안에 내용물이 터져 나온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때부터 아들의 울상과 가게에서의 진상은 시작됐고 나의 처절한 갖가지 대응 전략이 구사되었다.


"김밥 김이 터져서 속상하구나..."

평상시에는 이렇게 감정을 수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대부분의 경우 차분하게 할 수 있었기에 가장 먼저 꺼내 든 카드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


"H아, 김밥이 터져서 속상해~?

그럼 H는 어떻게 하고 싶어?"


"엄마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김밥이 먹다 보면 터질 수도 있는 거야.

 엄마 거랑 바꿔먹을래?"


아이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서툴지만 언어로 구사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육아가 전반기 후반기로 나뉠 정도로 전보다 훨씬 많이 수월해졌는데 이처럼 옛날로 퇴행해서 울음과 떼쓰는 것으로 표현할 때면 다시 막막함이 밀려오곤 했다. 밖이라 맘 편하게 훈육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되도록이면 가장 조용한 지혜를 짜내야 했다.


하지만 거의 10여분(짧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밥 먹고 있는 공간에서 이런 상황은 1시간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이었고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시간이었다) 가량을 칭얼대고 울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답답하게도 나의 대응 카드는 그 어떠한 것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쓰고 싶지 않은 최후의 방법 썼다.


" 너 계속 이렇게 짜증내고 울면서 안 먹을 거면

  먹지 말고 그냥 집에 가자."


이제 겨우 김밥 2개 정도 먹었는데 나는 보란 듯이 그릇을 전부 치워서 퇴식구에 갖다 놨고 아들은 클라이맥스를 갱신하면서 더 큰 소리를 지르고 울었다. 그리고 이러다가 결국 김밥 하나도 못 먹고 집에 가겠다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아이는 그제서야 조금 진정하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김밥 한 줄 먹이는 게 이토록 소란스러울 일인가?!

김밥 옆구리 터진 게 이토록 나라 빼앗긴 것처럼 서럽고 화가 날 인인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육아 지식과 아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이 오르락내리락거린다. 운이 좋으면 어떤 때는 금방 그 문제의 솔루션을 찾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아 그래서 그때 H가 그랬구나'를 느끼며 뒤늦게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들도 많이 생긴다.


이 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찜찜한 날이었다. 겨우 그냥 그날 하루 억지로 아이의 화와 불편함을 대충 봉합한 날이었는데 그 뒤에 친한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그 찜찜함이 해소됐다.


세 살 터울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언니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그날 역시 부서진 쿠키 때문에 징징거리고 있는 우리 집 아들 H를 보면서


"애들, 이상하게 다 렇더라~

우리 애들도 어릴 때 아이스크림 새거 아빠가 한 입 먹으면 난리 난리였어.

그래서 다시 새거 줘야 했어.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과자나 빵도 그렇고 처음 모양에서 바뀌면 너무 싫어하더라구~"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한 톨 먼지처럼 별거 아닌 걸로 아이가 하늘이 무너지듯 통곡하고 떼쓰는 일상을 겪을 때면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어렵고 예민한 아이를 가졌을까?' 하는 푸념과 나만의 멍에라는 착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 애도 그래~"
"우리 애도 어릴 때 그랬어~"

라는 주위 지인들의 이 한마디를 들으면 별 말 아닌데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은영 박사가 엄마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들 중 하나가

"선생님,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우리 애는 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오은영 박사 ,

"저 집 아이는 저쪽 코너만 딱 돌면 그 집 아이랑 똑같이 그래요."


아직까지는 배울 것도 많고 부족한 점 많은 엄마가 견디고 버티는 힘 중 하나는 빈약한 근거이긴 하지만 이 육아 보편성에서는 오는 위로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낳은 아이가 버거울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