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

by 김지숙 작가의 집


사하촌



가뭄 끝에 내리는 장맛비 일붕사 숲도 목욕하는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나무들의 살냄새 향기롭다

봉황대 옆집살이

수십 년 동굴 속에 사는 불상도 불상이지만

물아래마을 사람들의 삶은 물미도 녹아버리는 물난리에

그때의 얼굴이 십수 년째 그대로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딸 아홉에 열 번째 아들 놀던 말금이네

팽나무 그늘 아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가락바퀴처럼

매미 껍질 벗은 여름 나뭇잎 위에서 재재대던 붉은 햇살

어디로 다 가고 무당집 마당

석류꽃만 저 홀로 붉은 장마철 운곡리



몇 해 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어떤 단체에서 경남일대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의령의 한 사찰을 방문하고 주변의 관광지를 돌아보면서 함께 간 선생님의 고향이 근처라는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왔다

세월이 유수라는 말이 있듯이 지자체로 행정 방식이 바뀌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골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지는 기강나루 부근에는 댑싸리가 피어 있고 의령천으로는 높은 흔들 다리가 생기고 북카페가 있어서 정말 예전의 모습들을 찾기 힘들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비까지 내리니 운치가 있었다

여행이란 함께 가는 사람과 나누는 정에 따라서 기억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727년 창건했다는 성덕암인 현재의 봉황산 일붕사에 들러 그곳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소원을 올리고 돌아가는 함께 온 지인들의 발길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동굴 속에 넓게 놓인 불상도 불상이지만 수많은 소월을 담은 돌탑들이 줄을 서서 일붕사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사실 돌탑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라보면 왠지 꽉 막힌 느낌이고 수많은 소원과 염원과 기도가 그 속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돌을 쌓을 때의 마음들에서 느껴지는 그 무게감으로도 충분히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 소원들을 이루어 줄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마음이 무겁게 와닿기 때문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대웅전과 무량수전이 봉황대와 어우러진 모습을 보노라면 또 다른 운치를 느끼게 된다 절 안까지 차가 들어가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고 연못물도 맑다 일붕 서경보 스님말씀이 선의 정기가 너무 세서 화기가 발달되어 화기를 죽이기 위해 굴을 파서 법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세계적인 동굴법당 규모가 되었단다

일붕사에 들렀다가 주변의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소소한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고 함께 갔던 선생님들과는 더욱 친밀한 유대감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