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밭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 봄봄』





물밭



무량수전 앞에 매달린

눈물이 끈질기게 따라오던 날


세상 앞에서 네게 닿은 꿈을

눈으로 다 짓고 나니


창밖에서는

새벽달을 딛고 선 별들이


자꾸만 되돌아보라고

물밭에서 손짓한다




누구나 꿈을 꾸고 살아가지만 그 꿈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은 몇 손가락이 될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내고 싶지만 자신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운명처럼 따로 있다는 것을 살수록 느낀다 어린 시절의 꿈은 초록빛을 띤 단순해서 이루기 쉬울 것 같지만 그랬는지 청년 시절의 꿈은 원대해서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나이가 들수록 꿈도 머리칼 색을 닮아서인지 뜨겁지 않은 은빛이 된다

살면서 한 번도 꿈을 이루었는지 되짚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현실 밖의 꿈을 꾸어서일까 그래도 언제나 꿈을 생각하면 가슴을 설레고 가슴 벅찼던 기억은 있다

수평선 끝에서 몰려오는 햇살처럼 나뭇잎 끝에 부는 바람처럼 우주의 끝에서 밀려오는 공기처럼 꿈은 늘 내 곁에서 서성이며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알아본다면 춤을 추고 노래하며 내게 안겨들었을지도 모른다 꿈을 꾸기만 하고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턱을 괴고 내 곁에 머무는 동안 나를 기다리던 꿈들이 하나 둘 늙어 갔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시간들은 수초 속에 가라앉거나 혹은 구름 따라 떠나가 버린다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허공으로 사라진다 추억도 사람도 시간도 꿈도 한번 가고 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수평선 건너는 물밭에 새벽꿈 하나가 문을 두드린다 '이제라도 우리 잘 해 보지 않을래' 하며 깊은 잠을 흔든다

매거진의 이전글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