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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 빈 Sohnbin Nov 10. 2022

명품관의 소역사

입문과 출발점


1층 잡화 매장의 한국 최고의 트렌드 발신지, 확연히 구별되는 패션 전문점의 성격으로 최고의 위치를 점하던 때, 좀 여유 있게 또 다른 변화에 대한 꿈을 꾸던 그때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제안이기보다는 투입하기로 한 인사명령이었다.

물론 당시의 포지션으로 상당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었지만 매우 심각한 실적을 가진 명품관을 본다면 독이 든 성배였다.

WEST(생활관)은 특히 젊은 고객층이 선호하는 최고의 이미지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했고 나머지 층도 두루 영향을 받아 새로운 상품의 구현 매장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안정적인 매출과 소비자 선호를 받게 된 터였다.

당시 나의 지식은 하이 엔드 수입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얕았고 패션을 폭넓게 이해하기엔 의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을 넓혀가기 전에 나의 가치관으로 고급 수입품들을 들여다 열심히 판매하는 일에 바른 가치를 부여할 수 없었다.

외화를 낭비하는 일? 국내 소비재 산업에 피해를 주는 일? 소비자들에게 분수 넘치게 허영과 사치를 조장하는 일?

며칠을 생각해도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 당시 포지션의 직책에 나를 천거한 임원에게 고사하는 의견을 냈다. 사장도 반대했지만 자신이 강력히 주장했는데 반드시 가라고, 그것이 네게 기회이며 가장 창의적이고 잘 할 수 있는 적임자라 추천한 거라는 대답이었다.

다시금 돌아와 내 삶의 가치 존중을 위해 명령을 거부하고 직장을 그만 둘 거냐? 그러기엔 아무 준비 없는 상태였고,

고민하다 자신을 설득할 명분을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열흘 만에 보직을 맡았지만 

1, 국내 소비재 산업의 고품격화를 위해 이곳에서 쌓은 지식으로 봉사한다.

2, 건전하고 분수에 맞는 소비문화를 정착시킨다. 단 고소득자들의 소비가 소비시장의 선순환을 가져오도록 한다.

3. 고도의 마케팅과 제품 디자인, 품질 향상을 위한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국내 상품의 글로벌화에 기여한다.

위 세 가지 조건을 스스로의 빚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설득했다.


가치에 반하는 역할을 수행함에 내겐 파격적 제안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해외 브랜드를 익히기 바쁜데 전반적인 흐름과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니 백지상태에서 문맹을 깨치는 심정이었다.

잡화에 있으면서 에비앙 생수를 수분 공급하는 화장용 스프레이로 판매하는 새로운 시도로 스토리텔링을 하게 하면서 신문물을 접하는 개화기 인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선 수입 브랜드의 주요 아이템과 패션 경향, 타깃 소비자층과 포지셔닝이 머릿속에서 갈무리되어 있어야 하는데 부임한 매장의 전반적 상황 체크와 층별 구성을 파악하는 정도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실제 당시 명품관 매장은 브랜드 구성과 상품 조닝 자체가 명확한 콘셉트 없이 배치돼 있었고 실적도 부진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시장 성숙도와 연관이 있겠지만 최소한의 묶음 기준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였다. 2층은 베르사체 왕국이고 1층은 버버리, 에트로, MCM 일부 잡화류로 보면 되는데 매입 브랜드의 본계약 업체도 드물고 임의 수입업자들의 매장이 주류였다.

일단 나 자신이 명쾌한 개념 정립을 하고 현 단계에서 매장 재편을 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해외 패션 매거진을 구했고. 시간이 지나자 당시 일본에서 발간한 패션 컬렉션의 화보집을 구해서 열독했다.

파리 컬렉션과 런던, 뉴욕, 이태리의 각각 특성을 파악하고 매거진을 통해 현재의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는 자가 학습을 병행했다. 심지어 해외 오리지널 잡지에 나오는 패션 용어를 검색해가며 종합 개념과 세부 개념을 함께 익혔다.


그 시점에 해외 럭셔리 마켓에 대한 이해는커녕 직접적 현장을 볼 기회가 없었으니 최대한 자료 수집과 종합적 분석을 통해 개념을 만들고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파악하고자 했다.

국내에서 일제 강점기나 이후 6.25와 궁핍한 경제 상황을 거치는 동안 여유 있는 계층은 그들 나름의 물자 조달 루트와 해외 방문 기회를 통해 별도의 라이프 스타일을 누리고 있었으니 앞서서 양품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사례도 많았다. 맞춤 의상을 통해 자리 잡기 시작한 디자이너들과 수입 양품 취급 업자들의 공존이 있던 시기 정립된 개념의 스토아는 부재했고 음성적 거래 숍이 주류 역할을 할 때이고 가격도 비교 불가라 많은 마진을 붙여 거래했다.


그들 중 일부는 백화점을 통한 양성 거래 정규적 유통 채널에 편입하기 시작했다. 우선 음성적 수입과 탈세 등을 통해 고 마진을 만들던 어두운 시절의 관행이 사라지고 일부 소수의 전유물이던 시장이 88 올림픽 전후해서 해외 브랜드 유입과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종합 유통망을 통한 보증과 정찰제, A/S 등의 니즈가 커지고 마케팅 도구였던 서비스가 확장되는 경험이 일면서 구매 자극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해외 시장의 소비 브랜드의 흐름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도 유럽과 미국 브랜드에 대한 로망은 선진국에 대한 동경과 경외감의 후광효과와 함께 간간이 접하는 영화와 국내 주둔 미군의 소비문화에 영향받은 바 크다.

당시 미 8군 영내에 출입할 수 있는 계층들의 경우 자신들의 신분적 우월감과 대중들의 감상에 기대어 그들만의 차별화된 서구적 소비, 특히 미국 소비재를 접하는 계기가 되었고 니즈가 생기기 시작했다.


패션과 오디오, 카메라 등 생활용품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품류를 포함 소비문화의 격변기가 도래한 시기이며 오렌지족 등 용어로 표현되듯 해외 이민 가족, 유학생 등이 급속히 늘어나 해외 소비문화는 신 트렌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미국 이민을 한 가족이나 친척들이 사는 곳으로 유학을 하고 이중국적 소유자 정도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 강남 일원이다. 물론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 이촌동의 오래된 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유학생들은 방학 중에 귀국해서 몰려다니며 영어로 대화하고 미국 내 생활방식으로 분방하고 적극적인 표현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신귀족적 자만을 뽐내는 식이었다. 그 부모들의 돈벌이가 어떠했을까 싶은 대목은 선민의식에 젖은 그들에 대한 콤플렉스로 치부되기 일쑤다.

카페 문화가 등장하고 청담 일원의 이태리, 프랑스 레스토랑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던 시절에 백화점 중심의 상품 구성은 다분히 일본식의 아류였다. 신세계나 롯데가 일본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그 교류 방식은 지리상 가까운 물리적 이유 외에도 수시로 벤치마킹할 수 있는 편의성과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서로 이해하는 폭이 넓은 점이고 한자문화권이라 커뮤니케이션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유통회사들이 일본인 고문이나 자문단을 직접 고용하거나 현지 회사들과 지속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시절 롯데는 다 께시마 야, 신세계는 미쓰꼬시와 협력하고 한화는 세이유와 해태는 헤이와도와 GMS 체인 개발을 하던 시절이다.

한참 편의점이 들어오고 신업태의 수입이 유행처럼 번졌다. 도매 홀세일 업체까지 연결되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유통업에서 일본 이론서가 범람하다가 영미권 이론과 서적이 마케팅 관련한 분야와 함께 범람해서 상품 기획 분야 이론으로 체계화된 매장 구성과 변화가 가능한 단계에 왔다.잡화 매장에서는 용도에 묶이지 않고 1층의 상징성을 고려해서 종합 이미지를 보여줄 매장을 기획해서 한동안 동선 흐름에서 외진 쪽을 크게 분할해서 구성했는데 당시 스톰 오브 런던, 보이 런던, 클럽 모나코, 갤러리라파옡과 제휴해서 독자 기획 브랜드를 구성시켰다. 당시의 뉴트렌드를 빠르게 선보이는 역할과 고유 브랜드 상품으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려는 시도였다. 궁극으로 의류 매장으로 이동하게 됐지만 갤러리아의 개성과 고객 흡인력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이런 도전과 창발적 자세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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