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돌프 Mar 15. 2023

요즘 아이들의 꿈 '주식'

경기도의 한 작은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교실에서 하루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나, 아빠가 주식 100만 원어치 사줬다!”

 

        “우와, 좋겠다. 우리 엄마도 맨날 주식하는데,

          나한테는 안주던데.”

 

        “울 아빠도 맨날 주식하는데,

         내 이름으로 주식 제법 있음.

         나한테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선물해 주심.”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의

쉬는 시간에 일어나는 대화.


작은 학교였기에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아이들과 북적북적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늘 저의 곁에 와서 재잘대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쉬기도 하고 수업준비와 일을 했었어요.


아이들은 주말에 본 애니메이션 이야기, 게임, 마라탕 먹은 것, 연애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데

욕설이나 서로 비난하는 등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참견하기보다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저는 좋았습니다.

그저 귀엽기도 하고, 아이들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조금씩 더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주식이야기는 도저히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치기 어린 허세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까요. 아니면, 이제 겨우 중학생인 아이들이 자기가 가진 주식을 자랑하고, 주식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회를 만들어버린 이 세상을 탓하며 그냥 모른 체 넘어갈까요.

아무런 말 없이 넘겨버리기에는 마음이 무겁고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꿈꾸어야 할 미래가 그저 주식으로 가득 차버린 세상이라니,

저는 아이들이 살아나가야 할 세상이 그런 곳이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 제 말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아무런 의미 없이 반발심만 불러올 잔소리로 남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주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주식에 관한 아이들의 언어들 중 대부분은 그저 대충 주워들은 내용일 것이며, 그것에 관한 깊은 고민이나 생각이 있어서 한 말이 아니라,

그냥 툭하고 던지는 말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의 언어, 누구의 생각일까요?

아마도 그 대부분은 부모들의 언어겠지요.

부모들의 생각이며, 어른들의 문화입니다.

지금의 어른들이 습관처럼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깊숙이 교육해 온 것들이겠지요.


그래서 제가 아무리 그것이 아니라고 말을 한들, 아이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적인 반발감이 먼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발심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미 부모들의 언어, 습관, 문화 등 부모의 많은 부분을 닮아버린 이후이기 때문에 사실상 저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 잔소리로 들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어른들이,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불행한 미래사회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꿈꿔나가야 할, 배워나가야 할 삶의 많은 진리들 중에서 으뜸이 되는 가치를 ‘주식’으로 만들어 버린 어른들이 참 밉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몸 편히 돈을 벌어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라납니다.

자신들을 가장 사랑해 주는,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 그것을 최고라고 이야기하기에 그런 말들은 더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건물주를 꿈꾸고, 주식부자를 꿈꾸며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하는 삶을 꿈꾸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피하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학교에서 아무리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한들,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그 자체를 불필요하게 여기기에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점점 무기력해져만 갑니다.



'청소 왜 해요? 귀찮은데 그냥 청소부 불러서 돈 주고 청소시키면 안돼요?'



기본적인 청소의 가치조차도 돈으로 변해버린 아이들의 삶.

돈이 곧 진리가 되어버린 천박한 자본주의가 가지고 온 폐해를 그대로 받아들여버린 세상에서

앞으로 행복한 삶에 대한 꿈을 꾸며 성장해 나가야 할 아이들의 마음이 돈에 의해 매몰되어 버린 것입니다.

누가 이런 세상을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주식할 수 있어.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이 번 돈으로 그저 약간의 불로소득을 취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주식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어른들이 하는 주식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약간의 저항 같은 거란다.


너희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해 나가야 할 삶에 대한 생각,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식이 대박 나서 놀고먹기만을 바라는 거잖아.

일은 하기 싫고 어떻게 하면 편히 놀고먹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너희들의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습니다.

아이들이 잘 받아들였을까요.

아니면 잔소리로 그냥 흘려들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삶의 앞에 주어진 많은 시간들을 주식만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지나요?

그래서 한 달을 꼬박 벌어들인 돈 100만 원이 갑자기 1000만 원이 된다면 여러분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한 그 모든 시간들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것에 허무한 감정이 남지 않을까요?

가장 가치로워야 할 스스로의 가치가 단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인데도 그저 돈이 열 배가 되었다고 행복하기만 할까요?

그럼 반대로 힘껏 번 돈 100만 원이 누군가의 말이나 환경에 따라 갑자기 10만 원이 된다면 그때는 어떨까요?

그때는 '괜찮아 주식이란 그런 거니까 내가 번 돈 100만 원 따위야 언제든 10만 원이 될 수도, 1000만 원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상관없어'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런 세상을 그 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삶이 옳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 누가 가르칠 수 있나요.

그 또한 행복한 삶의 한 갈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 그 다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삶의 목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삶이 단지 돈이 먼저인, 돈이 최우선 순위가 된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경험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삶을 그려나가야 행복할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롯이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스스로의 삶을 꿈꾸기를,

그 속에서 온전한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그래서 삶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고 힘내어 그려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그러하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그런 교사가, 어른이 되어줄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