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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Mar 14. 2023

엄마는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백수 엄마가 된 나는

학생 때도 일을 할 때도 없던 월요병이 생겼다.


나는 원래 무얼 먹기 위해 음식 만드는 일을 즐겨하지 않았다.

즐겨하지 않으니, 그 즐거움을 알 리 없고, 그러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던 내가 요즘 최선을 다하는 일 중 하나가

아이 밥상 차리기이다.


9살 아이 밥상을 위해,

절대 쓸 수 없는 재료가 몇 가지 있다.

특히 아직 매운맛에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에게

케첩을 제외한 빨간색 재료는

밥상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음식은 간장 베이스다.  

간장에 메이플 시럽으로 단맛을 가미하고,

아니면 소금 간에 참기름을 두르고

국물은 고기육수 혹은 멸치육수로 맛을 낸다.


그런 몇 안 되는 조건아래에서도

5대 영양소 중 하나라도 소홀해지지 않도록 챙긴다.

어제 먹은 반찬이 그대로 나오더라도

새로운 메인 메뉴 하나는 꼭 차려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학교 급식과 메뉴가 겹치지 않도록 매일 급식표를 살펴본다.

맛의 조화도 생각한다.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이런 엄마의 고심을 아는 건지, 아이는 천진한 얼굴로 엄마 오늘 메인 메뉴는 뭐야~~?를 매일같이 묻는다.

그리고 엄지를 추켜올리며 엄마 손맛(어떻게 엄마 손맛이라는 말을 알았을까. 신기하다)이 최고라는 칭찬도 빼놓지 않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아이의 칭찬에, 굳이 스스로 정해놓은 까다로운 룰들을 지켜가며

아이 밥상에 쓰는 신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신경 쓴 밥을 나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늘 어느 정도 심심한 간에 약간의 고소함을 가미해 최대한 재료의 맛을 살린 아이 밥상에는

자극적인 맛이라고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 밥상에 절대 쓸 수 없는 재료들로 만든 메뉴가 늘 먹고 싶다.

얼~큰 하고 맵싸하고,

쫄깃쫄깃 씹는 맛에,

날것 그대로의 신선함도 좋고,

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시원한, 그런 맛이 항상 그립다.


남편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고,

나 역시 일을 할 때면 대부분의 먹거리를 밖에서 해결했겠지만,

지금은 밖에 나갈 일도, 밖에서 사 먹을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나 혼자 먹자고 어른반찬까지 해댈 만큼 요리에 솜씨도, 부지런함도 없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집에서 밥 먹지 않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빵순이가 되어있고,

그러다 속이 좀 불편하다 싶을 때는 라면이 있어 다행이다.


남편과 함께 밥을 먹는 토요일, 일요일은

좀 먹음직스러운, 입맛 당기는 메뉴를 차려내고 싶은데,

그것도 음식솜씨가 없어 영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는다.


늦게 일어나 오전은 커피에 과일, 우유에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아침 겸 점심에는 쉽진 않지만 남편과 함께 먹을 메인 메뉴 한 가지를 따로 만들어 먹고

저녁에는 그동안 못 먹은 메뉴를 찾아 외식으로 해결을 하니

그나마 주말이면 나의 위가 위로를 받는다.  


말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둘이 있는 평일에는 대화도 한정적이다.

아이의 스케줄을 쫓아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빨리빨리! 늦었다 늦었어!

밥 먹어~ 옷 입어~ 양치해~ 숙제해~.....

그러다 삐끗하는 순간 아이한테 쏟아내는 잔소리 한 바가지.


그러다 남편과 함께 있는 주말이 되면

대화가 좀 다양해진다.

한 주 동안 있었던 다양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비록 당장 구체적인 계획은 없더라도 앞으로 가게 될지도 모를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와의 아이대화가 아닌, 아이에 대한 어른대화를 나눈다.

그럴 때면 쓰는 단어도 다양해지고

말할 때 감정도 다채로워진다.


그래서일까!

학생 때도, 일을 할 때도 한번 겪어 보기 못한 월요병이 생겼다.

월요일부터 또 5일을 꼬박 엄마로! 좋은 엄마로! 아이의 엄마로! 견뎌내야

나로! 어른으로! 솔직한 어른으로! 살 수 있는 주말이 온다.

말하고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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