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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Jun 19. 2023

생일날에, 꼭 케이크가 있어야 할까?

친구와 놀던 9살 아이가 엄마를 찾아와 묻는다. 

아마도 지들끼리 놀다가 논쟁이 있었던 모양이다. 

글쎄.... 

언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이 친구 엄마가 재빨리 의견을 내놓았다. 생일에는 케이크가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순간, 그래? 필수이기까지? 케이크가 없다고 생일이 즐겁지 않거나, 의미가 없는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생일날에는 꼭 케이크가 있어야 하는 걸까? 



며칠 전 나는 생일을 맞았다. 


생일날은 가능한 한 차분해지려고 애를 쓴다. 

내가 가진 징크스라면 징크스라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특별한 날이라고 유난을 떨면, 떠는 만큼 실망이 커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생일에 대한 아주 즐거운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넓~ 어서 생일을 챙겨주는 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서로의 생일을 꼭 챙겨가며 어울리는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잊지 않고 챙겨주면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늘, 챙겨주는 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마음속에 다져두어  

상처받거나 실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나름의 방법으로 애를 쓰는 것이다. 


이번 생일에도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면서 호들갑 부리지 말고, 

그저 보통의 날처럼 하루를 잘 지내보자는 각오를 다졌다. 

아침에는 남편이 끓여놓은 미역국과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었고

전날 저녁에는 예쁜 꽃다발까지 받았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하루를 차분히 시작했다. 


아이부터 학교에 보내고

뒤이어 출근을 하던 남편이 밥 꼭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겼다. 

혼자 남은 오전시간, 평소와 다름없이 집안일도 하고 책도 읽고 몇 글자 끼적이기도 하다 보니 남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별로 밥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오후에 아이 스케줄 챙길 생각에 뭐라도 먹어두는 게 좋을 듯해서 

밥은 빼고 미역국만 한 그릇 먹었다. 

따뜻하고 맛이 좋았다. 새삼 생일 미역국이 이런 맛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미역국을 곁들인 보통날 같은 하루를 보내는 동안 

몇 통의 축하 문자를 받았고 나도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답장을 했다. 


저녁에는 세 식구 함께 밖에서 맛있는 밥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남편이 케이크를 사겠다고 했다. 

이미 배도 부른 상태에다 9시가 다 된 시간이라 나는 케이크를 사지 말자고 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사야 한다고 남편은 뜻을 굽히지 않았지만, 

주변에 케이크집이 모두 마감을 한 상황이라 결국 다음에 케이크가 생각나는 날 먹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전날 미리 케이크를 사 두겠다는 남편을 내가 말렸다. 

우리 집 아침시간은, 케이크에 초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할 만큼 절대 여유가 없을게 분명해서 

케이크는 생일날 저녁에 하자고 했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지난달 있었던 남편의 생일날에도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내가 먼저, 아침에는 미역국에 생일밥을 먹고

우리 세 식구가 다시 모이는 저녁시간에 케이크와 함께 파티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막상 저녁에는 또 저녁대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결국 남편도 그렇게 케이크 없이 생일을 지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케이크 없는 생일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지나간 생일이 내내 속이 상했다. 


생일날 굳이 생일답지 않게 보내려고 애를 쓰고 

축하를 받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마음의 단도리까지 미리 해 놓는다는 게 

왜인지 올해는 유난히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도 딸 생일을 깜빡하고 전화 한 통 없었던 엄마 아빠의 무심함에는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이 많은 부모의 깜빡증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라, 축하받지 못한 내가 서글펐다. 

축하 못 받아도 괜찮다는 건 다~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마음 밑바닥에는, 생일은 아무렇지 않은 보통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의 생일날, 남편에게 생일을 맞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던 생각이 난다. 

“나이 먹는 게 뭐 그리 좋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케이크 없이 지나간 남편의 생일날에는 미처 그 마음을 몰랐다. 

남편에게도 나름의 헛헛함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짐작하지 못했다. 


왜 생일날이면, 비싸다는 케이크를 사는지... 알 것 같다. 

그저 케이크, 빵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축하할 일을 충분히 축하해 주고 축하받는, 그런 시간을 만드는 데 진짜 필수일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다면 케이크 하나로 끝내지 말고 

축하 메시지를 담은 벽장식도 하고, 예쁜 꽃도 준비하고~ 

크게 노래도 불러주고, 꽃가루도 날리고 

마음을 담아 포장한 선물을 열어보는 설레는 순간도 만들어주면서 

요란스러운 축하를 주고받는 소중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함께 기쁨과 고마움을 느낀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행복한 생일의 추억이 쌓일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생일날마다 특별하고 요란스럽게 축하의 시간을 마련하기로!  

축하를 못 받게 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축하를 받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테다. 


“아들~ 앞으로 우리 집에서는 

 생일날 꼭 케이크를 준비할 거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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