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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ug 13. 2023

플랜은 완벽했다
- 마흔에 첫 출산과 둘째를 꿈꾸다!

예정일은 1월 6일.

새해가 시작되고 6일째 되는 날이라고 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3월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따뜻한 봄이 시작되는 달이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 이제 막 세상 구경을 시작한 아이가 맞이하는 세상이 되어준다는 건 아무래도 특별하다 생각되었다. 아이는 흐드러진 벚꽃잎들이 바람을 따라 꽃비가 되는 모습을 세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학교 입학이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생일을 맞이한다면, 아이는 학창 시절을 보내는 내내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생일이 좋은 타이밍이 되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3월이 딱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임신을 준비할 때부터 3월을 염두에 두었고, 당연히 3월생이 되는 줄 알았는데, 모자란 나의 계산 착오로 아이는 1월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1월생도 마음에 들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 태어난다니, 뭔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는 같은 나이라도 개월 수에 따라 발육의 차이가 커서,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초등학교 때까지 몇 월생이냐가 중요하다는데, 가장 빠른 1월에 태어난다면 또래에게 치일 걱정은 좀 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열두 달을 꼬박 채워 한 살을 더 먹는 온살배기가 된다고 하니 어쩌면 1월은 퍼펙트한 때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칫 한 살을 더 먹느냐 마느냐~ 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거였다. 아이가 태어나던 해만 해도 만 나이가 도입된다는 얘기가 없던 때라 며칠만 일찍 세상에 나와도 하루 이틀 사이에 1살을 더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12월 31일에 응애~ 하고 신고식을 한다면 다음날 바로 아이는 2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며칠 상간으로 12월생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간절해져 갔다. 

그때부터는 산부인과 담당선생님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 1월에 태어나게 해 주세요! 12월에 태어나면 어떡해요. 절대 안 돼요~” 

그렇게라도 내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안정감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전문의도 내 불안을 잠재워 주지 못했다. 

“제 동생이 조카를 12월 31일 날 낳았어요. 누나가 산부인과 전문의인데도 말이에요.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날은 의사인 제가 결정할 수가 없어요.”라는 것이다. 

기댈 곳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기도라도 해야 한다. 

‘꼭 1월생이 되게 해 주세요.’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 남편은 생각이 좀 다르다고 했다. 1월보다는 12월생이 낫다는 거였다. 나의 애타는 바람을 안다는 사람이 이런 배신감 넘치는 소리를 하다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반박할 수 없는 일리가 있었다. 나이 많은 엄마 아빠인 우리 입장에서는 아이와의 나이차를 한 살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아이가 12월에 태어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가 1월생이 된다면 아이와 나는 마흔 살 차이이지만, 12월에 태어난다면 서른아홉 살 차이로 앞자리가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흔들렸다. 아이가 며칠 만에 두 살이 되느냐~ 마느냐~ 의 문제가 곧 서른아홉 살 차이 나는 엄마냐~ 마흔 살 차이 나는 엄마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충분히 동의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이 태어나는 걸, 더군다나 첫 아이 출산에서 예정일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12월 말이냐~ 1월 초냐~하는 최종 결정은, 그저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그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우리 부부에겐 한 가지 더 간절한 플랜이 있었다. 

바로 둘째에 대한 계획이었다. 

일찍이 출산에 대한 관심과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우리는 마흔이 되어서야 아이에 대한 욕심을 부려보았고, 다행히 임신에는 성공을 했지만 노산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말았다. 그러니 첫 아이 임신과 동시에 둘째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하게 되었는데, 출산에 속성과정 같은 시간 단축의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먹은 나이를 되돌릴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마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생각해 낸 우리의 플랜은 1월에 첫째가 태어나면 그 해 12월에 둘째가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와 나이차이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면서 둘째까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참.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어도 너무 없고,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출산 후 산후조리의 어려움이 어떤 건지, 육아의 고됨이 뭔지를 전혀 몰랐다. 그저 마흔에도 임신이 체질이라고 생각하던 무지한때라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던 게다. 


아이는 1월에 태어났고, 우리는 지금 세 식구다. 

플랜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지만,  여전히 우리의 플랜은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한 가족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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