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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ug 24. 2023

하트 이쁘게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며칠째 벼르고 있었다. 

그래. 벼르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그날도 아이는 수학문제집을 풀다 말고 또 징징대기 시작했다. 

매일 30분 정도 집에서 아이 수학공부를 챙기고 있는데, 

연산 문제집 3페이지에 교과 수학문제집 4~6페이지 정도가 아이에게 주어지는 하루치이다.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학원 수업도 듣고 있고 동시에 학원 숙제까지 더해지기도 해서인지 어떤 날은 아이에게 버거운 양이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과가 되기도 한다. 

사실 매일! 정해진 일정을! 거르지 않고! 해내기란 어른인 나에게도 쉽지가 않다. 아마 그 일이 내 수학공부였다면 진작에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고 말았겠지만, 그래도 아이 공부 습관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무진장 노력을 하고 있다. 다행히 아이가 엄마와 하는 수학공부를 거부하지 않고 잘 따라오는 듯 해 대견하고 고맙다. 하다 보니 수학머리도 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입장에서 점점 욕심도 생겼다. 

그런데 난이도 높은 문제집을 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아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거다. 스스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도와 달라는 소리를 먼저 하고, 그래도 잘 안된다 싶으면 칭얼칭얼 울기 시작하고, 문제집이 잘못됐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불만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거다. 수학공부를 할 때마다 아이는 아이대로 징징징징~ 나는 나대로 언성이 높아진다. 이러니 수학공부 시간이 새삼 위태위태해졌고,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그날도 울기 직전인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더니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문제가 이상하다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탓하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럴 땐 잠깐 그 문제는 건너뛰고 나중에 풀어보라고, 나름의 여유를 주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귀는 닫아버리고 생각은 멈춰 버린 아이는 곧 눈물범벅이 되었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아무런 진척 없이 문제집을 붙들고 앉아있는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 오늘은 수학 그만하고 내일 다시 해보자고 했는데, 그 또한 허사였다. 오늘 할 일이니까 무조건 할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똥고집을 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은 그만하고 쉬라는데 굳이 하겠다는 아이의 청개구리 고집은 꺾일 줄을 모랐고, 눈물에 젖은 문제집은 점점 너덜너덜해져가고~ 결국엔 수학 그만해! 까지 나오고 말았다. 수학 문제 하나를 놓고 1시간이 넘도록 이 난리를 치르고 나서야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약속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울지 않고 스스로 마무리할 자신이 있을 때까지 수학공부는 하지 않기로! 아이 스스로 자신이 생겼을 때 그때 엄마한테 수학공부하자고 먼저 이야기하기로! 


잠자리에 들기 전 여유를 찾은 듯 한 아이는, 내일 ‘수학공부 하자’고 엄마한테 말할 거라고 먹은 마음을 이야기했다.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해주다니~ 내 아들이지만 참 기특하다 싶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게 할까~ 싶은 마음에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싶어졌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 입에서는 수학공부 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첫날은 슬쩍 엄마 눈치도 살피는 것 같더니 둘째 날, 셋째 날은 그저 수학 안 하니 신나고 좋은듯했다. 슬쩍 돌려서 물어보니 언젠가는 할 거니까 걱정 말라며~ 꽤나 당당한 태도까지 보였다. 


그렇게 며칠째 손을 놓기 시작한 집수학공부. 

언제까지 쉴 셈인지 슬슬 두고 보자 싶어졌다. 

그러다 며칠만에 학원 숙제 때문에 별 수 없이 다시 수학 문제집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 

며칠 전이나 오늘이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 전 일 때문인지 아이도 처음엔 나름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문제집이 잘못됐다는 둥 선생님이 숙제를 너무 많이 내줬다는 둥 짜증이 시작되었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나는 나대로 또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휴---- 이게 도 닦는 게 아니면 뭘까. 

더 늦기 전에 점심이라도 먹이자 싶어~ 준비해 둔 오므라이스를 내놓았다.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서로 좀 진정하고, 마음의 환기가 필요할 때라는 생각에 

계란옷 위에 특별히 예쁜 하트를 그리기로 했다. 

그런데 새로 오픈한 케첩 튜브가 말을 잘 안 들어 아쉽게도 하트가 삐뚤어지고 말았다. 

그런 하트를 보고도 아이가 먼저, 와~ 하트다!! 반가워하길래. 

엄마가 예쁜 하트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고... 

엄마가 하트 이쁘게 못 만들어줘서 미안해~라고 했는데..... 


으앙~~~~~ 아이가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 같기도 하고, 무언가 마음이 훅 풀리는 것 같기도 한 울음이었다. 

왠지 내 마음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닭똥 같은 눈물에 서럽디 서러운 표정의 입꼬리를 하고 울고 있는 아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수학공부 때문에 구박하듯 쏟아낸 말들이 순식간에 떠오르면서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엄마가 미안해. 

네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해서 미안해. 

.

.

.

.

조금 후에 왜 그렇게 크게 울었냐고 물어보았더니 

감동의 눈물이었단다. 엄마의 그 말 한마디에, 

아이는 못난이 하트 속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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