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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Dec 11. 2023

마흔아홉에 백수가 된 엄마

따라주는 체력을 믿고 출산 전날까지 밤을 새우고 일을 했다. 조리원으로는 후배들이 찾아와 긴긴 회의를 했다. 사무실의 배려로 출산 후 두 달 동안은 출근 없이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그 뒤로는 신생아인 아이를 두고 2주에 한 번꼴로 회사에서 밤을 새 가며 일을 했다. 다행히도 아이가 백일이 될 때쯤 좋은 이모님을 만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는 갓난쟁이 때부터 엄마만큼이나 이모님 하고도 가까워졌고, 남편은 종종 쪽잠 자는 아기를 혼자서 감당하며 밤을 보냈다. 3살부터는 오후까지 보육이 가능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도움이 더해졌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나에게 ‘육아 휴직’이라는 선택은 없었다. 그만둘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그 결정을 해야 했다. 다행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출산과 육아라는 나의 사정을 널리 이해 준 덕에 계속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산과 육아 중에도 공백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참 좋은 편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할 만하다’... 는 게 딱 그만두지 않을 만큼일 때도 많았다. 일정한 루틴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일정을 조정해 가며 일을 해야 하는 프리랜서에게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집에 아이를 두고 온 엄마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고, 불안함에 안절부절이 되었다. 그래도 위기상황마다 또 해결방법을 찾아 나갔다. 제일 먼저 회사 일을 제쳐두고 아이에게 달려가 주는 남편이 있었고, 아이 봐주시는 이모님이 다행히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계셔서 급할 때마다 도움을 청할 수 있었고, 그도 사정이 어려울 땐 이모님의 대학생 딸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같은 어린이집,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동네 엄마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지방에 사는 엄마가 급하게 올라오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매일같이 약속된 시간에 맞춰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나에게는 약속된 일정에서 벗어나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쫓기고 쫓기기를 거듭하고 나면 어느 날은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고민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급한 상황을 넘기고 나면 마음은 또 간사해진다. 돌발 상황이 잦다는 단점은 곧 업무시간이 유연하다는 장점이 되어, 일과 육아를 병행할만하다는 쪽으로 다시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이 회사에 매어있는 몸이 아니니 믿을만한 누군가가 하루 몇 시간만 아이를 케어해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렇게, 일을 계속할 만한 이유를 찾아가며 일을 이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 즈음 7년 동안 아이를 봐주시던 이모님의 갑작스러운 이사가 있었지만, 학교 돌봄 교실에서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었다. 하교 후에 학원시간 전까지 안심하고 아이가 지낼 곳이 되어주었다. 학교 돌봄에는 믿음직한 선생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고, 또 친구들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마음이 달랐던 모양이다. 


부쩍 “엄마가 회사를 안 다녔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떤 날은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어떤 날은 불만을 털어놓듯이 분명하게, 어떤 날은 부탁이 되어 애절하고 간절하게, 아이는 마음을 드러내었다. 특히 학교 돌봄이 가기 싫은 날은 그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다른 친구들은 돌봄 안 가는데, 나는 왜 가야 하냐고~ 가기 싫다고. 어릴 적 나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아이의 그 마음은 두 번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초등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엄마 없는 빈집이 나도 싫었다. 엄마 없이 혼자 간식을 챙겨 먹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엄마가 피곤해하는 상황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의 불만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늘 혼란스러웠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이 친구들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는 건지, 아님 아직 어린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가며 자신의 처지를 속상해하는 건 너무 가혹하니 아이의 바람대로 아이 케어에 집중하는 게 맞는 건지... 여러모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러던 중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론이 내려졌다. 마흔아홉이 되는 해에 함께 일을 하던 팀의 프로젝트가 스톱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자연스레 나도 일이 끝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백수가 된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이제 고민도 갈등도 없이, 아이 케어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가 “엄마는 하는 일이 없잖아. 아빠는 회사에서 일하고,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데....”라는 말을 했다.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9살짜리 철부지의 입장에서 뱉은 순전히 9살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일 테지만, 하는 일 없는 당사자가 된 백수 엄마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 한마디였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멍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일격을 가했다. 엄마가 얼마나 하는 일이 많은데, 날마다 밥도 해주고, 옷도 빨아주고, 집도 깨끗하게 해 주고, 학교 데려다주고, 학원 데려다주고... 그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아이를 향해 조목조목 엄마에게 주어진 많은 할 일을 설명해 주었지만, 그 많은 일의 대부분이 너를 위해서라는 걸 어필했지만, 시원하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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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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