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입니다.
불혹不惑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
나이 40세를 이르는 말
출처:네이버사전
불혹의 불이 불타오르는 불(Fire)이 아닐까. 나의 불혹에는 유혹이 불타오르고 있다.
어릴 적 내가 보던 엄마 아빠는 생활에 안정을 찾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듯 열심히 가족을 먹여 살려보려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직장에 성실히 다니셨고 엄마는 가족들을 입히고 먹이는 일에 열심히였다. 그리고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재테크에도 열을 올렸다. ‘나’ 가 아닌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랬다.
40대의 어른은 당연히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도 세상 유혹에 갈팡질팡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불혹.
불혹을 이미 3년이나 겪었다. 하지만 유혹은 눈에 안 띄는 곳이 없었다. 매일 가는 동네 마트에서도,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나타나는 핸드폰 화면에서도, 그리고 친구들과의 수다에서도.
요즘 유혹의 신호를 가장 많이 보내고 있는 것은 나다. 내 몸.
누가 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마흔이 되면 아프다고 했다. 멀쩡하던 몸이 마흔이 지나면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나…. 예외인가 싶게 너무 멀쩡하게 마흔을 보냈다. 30대 후반 뒤늦은 나이에 둘째를 출산한 것 치고 너무 내 컨디션은 괜찮았다.
하지만 엄마는 예전부터 말씀하셨다. 입조심하라고.
역시 입이 방정이었지. 마흔은 운 좋게 넘겼는데 그 운이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여기저기 아프다. 야식을 종류별로 때려 넣어도 끄떡없는 위장을 지녔다고 자만했었다. 살기 위해 의지했던 카페인 때문이었는지,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밤마다 찾았던 알코올 때문이었는지 아님 그 둘 다 때문인지 결국 위장은 ko패를 당했다. 그것은 시작이었을 뿐.
세상이 빙글빙글. 귀 속에 돌이 있다고? 어릴 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 뭐였더라... 어쨌든 반갑지 않은 이석증을 맞이했다. 허리도 아팠다가 다음엔 손목도 시큰거린다. 파스가 집에 떨어지면 불안할 지경이다. 어릴 때 항상 안방 서랍 한편에 파스가 두어 장씩 쟁여져 있던 이유를 슬프지만 이제 알 것 같았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다시 투어가 유행이란다. 유럽투어, 동남아투어, 심지어 전국 빵집 투어까지. 나도 시국에 맞춰 또 다른 투어를 나선다. 어제는 내과, 오늘은 이비인후과. 심지어 잘 가지도 않았던 피부과에, 최종 목적지는 대학병원행이다. 원래 게으른 사람이 맞나 싶게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양배추가 좋다더라, 효소가 좋다더라. 다음은 매일 피곤해서 아이와 못 놀아주면 안 되니까 종합 비타민. 코끼리 귀도 이렇게 팔랑 거리지는 않을 텐데 작디작은 내 귀는 매일같이 팔랑거린다.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개수만큼, 결제 문자가 오는 만큼 건강해진 느낌이다. 밥 먹기가 귀찮아 알약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현실이 되었다. 조금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배가 부른 만큼 마음도 불러온다. 왠지 몸이 20대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오후에 서너 시만 되면 꾸벅꾸벅 졸린 눈을 마주하고 나면 곧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주부 경력 12년 차. 아직 살림이 완벽하지 못한 이유는 장비발이 부족해서이다. 인스타그램의 완벽한 주부들을 보니 정갈한 그릇들과 예쁜 조리도구들이 보인다. 나도 저것들만 있으면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 뺨치는 그럴싸한 식사를 차려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또 검색에 들어간다. 너무 편한 세상. 집에 누워서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이렇게 쇼핑을 할 수 있다니. 심지어 삼성페이는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다.
이제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 택배트럭을 혹은 바다 건너에서 나의 아이들이 오고 있다. 그릇, 컵, 스푼세트 등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저런 못생긴 것들로 살림을 하고 싶지는 않아!!. 택배상자가 열리고 그날 저녁 새로 온 그릇들로 식사를 차렸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집밥이라서일까 인스타 속 사진과 다르다. 메뉴의 문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최후에는 핸드폰을 탓해보기도 한다. 내 휴대폰카메라가 그들과 달라서 그럴 거야. 그러다 결국 최신기종 핸드폰 검색에까지 이르렀다.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기엔 너무 큰 금액이다. 다행이다.
40대가 되면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내 어린 시절과는 달리 40대는 너무 연약해서 주변의 유혹에도 너무 쉽게 휘둘린다. 갈대도 이 정도로 휘둘리지는 않을 텐데. 난 인자한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에게 소리 한번 안지를 줄 알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할 줄만 알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인상 찌푸리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난 감정에 쉽게 동요되기도 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버럭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사춘기가 지난 지 사반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누구 인가를 수없이 외치고 있는 중이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는 없는 것 같고 마음은 더 작아졌다. 언제쯤 나는 완전한 어른이 되는 걸까.
공자는 마흔에 불혹을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나이와 지금 나이를 비교하자면 물론 차이는 한참 있을 테지만 마흔은 지금 사회에서도 공식적인 성인이 아니던가. 10년쯤 후 50대가 되면 정말 하늘의 뜻을 알고 진정한 지천명을 누리며 불혹을 이미 깨달았을까.
그러기엔 지금도 내 주변에는 유혹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