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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May 23. 2023

칩거 붕어, 집밖으로 나가다

여권이 이틀만에 집으로 오는 나라

 지금 생활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이번 수능이 끝나면 정시 원서 접수 기간 전에 3주간 해외에 머물다가 오기로 했다. 사회에서 엄청 큰 액수는 아니지만, 내가 해외주식을 하면서 모은 돈을 경비로 쓸 계획이었다. 대략적인 날짜랑 지역만 생각하고,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던 엄마에게 갔다.


 “엄마, 나 수능 치고 겨울에 해외 나가도 돼?”


 “혼자 나가게?”


 “응…”


 “갈 수 있으면 가라? 왜? 니 돈으로 갈 거 아이가?”


 “그렇지?”


 “그럼 가도 되지 뭐. 좀 보태줘야 되나?”


 “음… 만약에 지원해준다면 얼마나 가능한데?”


 “뭐, 1/3? 반반?”


 “반반 콜!”


 “그래! 다녀와라.”


 “예! 수능 원서 사진도 새로 찍어야 하니까 이번에 여권 만들면서 미리 해놓으면 되겠다.”


 “또 찍어야 되나?”


 “어. 수능 사진이 여권 사진이랑 조건이 같아서 한 번에 하면 돼.”


 “그럼 시간 있을 때 해놔라.”




 며칠 뒤 주말, 간만에 바닷가에서 외식을 했다. 그러고보니 엄마 아빠랑 겸상을 할 일이 거의 없어서 내가 해외여행 얘기를 꺼낼 기회도 없었다.


 “엄마, 아빠한테 나 겨울에 해외 나가는 거 얘기했어?”


 “아직 얘기 안 했는데?”


 “뭘?”


 “아.”


 엄마가 아빠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 그래 얘기했나?”


 “일단 내가 생각한 방법은, 항공이랑 숙박처럼 굵직하게 들어가는 건 내가 알아서 낼게. 나머지 자잘하게 들어가는 식비나 입장료 같은 것만 지원받고. 어때?”


 “물가 비싼 데 가면 우리가 더 부담되는 거 아이가?”


 “ㅇㅇㅇ(필명25), 숙박비까지 우리가 반은 지원해줄게. 대신, 이건 조건부다. 올해는 어디든 가라. 이제부터는 적수를 두고 더 하든가 해라.”


 “응…”


 “계속 집에서 공부만 하다간 폐인 된다. 밖에도 좀 나가고. 이번 수능 끝나면 해외는 다녀와라.”


 “알았어…”




 월요일이 되자마자 여권 발급 신청하러 구청에 갔다. 마지막으로 외출했을 때가 벚꽃이 활짝 폈던 때였나? 이제 초록색으로 물들어버린 나무들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이 생활을 하다보면, 분명 시간의 흐름은 잘 느끼는데, 이상하게 요일 감각이 사라진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생각해보니, 수령할 때 다시 집밖으로 나오는 게 귀찮아서 우편을 체크했다.


 “등기는 본인 수령만 가능하시고요.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우체국 기사님이랑 통화하시면 돼요.”


 담당자분이 이렇게 알려주셔서 나는 당연히 그 다음주 수요일~목요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청하고 이틀 후인 수요일에 바로 등기가 왔다.



 발급일에는 화요일 날짜가 찍혀 있는 뜨끈뜨끈한 새 여권.



 “엄마! 이거 봐!”


 “오, 벌써 왔드나?”


 “와… 바로 어제 만든 여권이래… 와, 와, 아니, 이거 빛에 비춰보니까 훈민정음 써있어. 내지도 너무 예뻐. 엄마도 빨리 봐봐. 응?”


 “그래. 일처리는 우리나라가 최고라니까? 이건 국뽕이 아이라 사실을 얘기하는 거야.”


 “…여기 봉투에 쓰인 ‘세계 최고의 조폐/인증/보안 서비스 기업 한국조폐공사’는 인정. 진짜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


 여권도 만들었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해방되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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