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이틀만에 집으로 오는 나라
지금 생활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이번 수능이 끝나면 정시 원서 접수 기간 전에 3주간 해외에 머물다가 오기로 했다. 사회에서 엄청 큰 액수는 아니지만, 내가 해외주식을 하면서 모은 돈을 경비로 쓸 계획이었다. 대략적인 날짜랑 지역만 생각하고,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던 엄마에게 갔다.
“엄마, 나 수능 치고 겨울에 해외 나가도 돼?”
“혼자 나가게?”
“응…”
“갈 수 있으면 가라? 왜? 니 돈으로 갈 거 아이가?”
“그렇지?”
“그럼 가도 되지 뭐. 좀 보태줘야 되나?”
“음… 만약에 지원해준다면 얼마나 가능한데?”
“뭐, 1/3? 반반?”
“반반 콜!”
“그래! 다녀와라.”
“예! 수능 원서 사진도 새로 찍어야 하니까 이번에 여권 만들면서 미리 해놓으면 되겠다.”
“또 찍어야 되나?”
“어. 수능 사진이 여권 사진이랑 조건이 같아서 한 번에 하면 돼.”
“그럼 시간 있을 때 해놔라.”
며칠 뒤 주말, 간만에 바닷가에서 외식을 했다. 그러고보니 엄마 아빠랑 겸상을 할 일이 거의 없어서 내가 해외여행 얘기를 꺼낼 기회도 없었다.
“엄마, 아빠한테 나 겨울에 해외 나가는 거 얘기했어?”
“아직 얘기 안 했는데?”
“뭘?”
“아.”
엄마가 아빠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 그래 얘기했나?”
“일단 내가 생각한 방법은, 항공이랑 숙박처럼 굵직하게 들어가는 건 내가 알아서 낼게. 나머지 자잘하게 들어가는 식비나 입장료 같은 것만 지원받고. 어때?”
“물가 비싼 데 가면 우리가 더 부담되는 거 아이가?”
“ㅇㅇㅇ(필명25), 숙박비까지 우리가 반은 지원해줄게. 대신, 이건 조건부다. 올해는 어디든 가라. 이제부터는 적수를 두고 더 하든가 해라.”
“응…”
“계속 집에서 공부만 하다간 폐인 된다. 밖에도 좀 나가고. 이번 수능 끝나면 해외는 다녀와라.”
“알았어…”
월요일이 되자마자 여권 발급 신청하러 구청에 갔다. 마지막으로 외출했을 때가 벚꽃이 활짝 폈던 때였나? 이제 초록색으로 물들어버린 나무들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다. 이 생활을 하다보면, 분명 시간의 흐름은 잘 느끼는데, 이상하게 요일 감각이 사라진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생각해보니, 수령할 때 다시 집밖으로 나오는 게 귀찮아서 우편을 체크했다.
“등기는 본인 수령만 가능하시고요.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우체국 기사님이랑 통화하시면 돼요.”
담당자분이 이렇게 알려주셔서 나는 당연히 그 다음주 수요일~목요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청하고 이틀 후인 수요일에 바로 등기가 왔다.
발급일에는 화요일 날짜가 찍혀 있는 뜨끈뜨끈한 새 여권.
“엄마! 이거 봐!”
“오, 벌써 왔드나?”
“와… 바로 어제 만든 여권이래… 와, 와, 아니, 이거 빛에 비춰보니까 훈민정음 써있어. 내지도 너무 예뻐. 엄마도 빨리 봐봐. 응?”
“그래. 일처리는 우리나라가 최고라니까? 이건 국뽕이 아이라 사실을 얘기하는 거야.”
“…여기 봉투에 쓰인 ‘세계 최고의 조폐/인증/보안 서비스 기업 한국조폐공사’는 인정. 진짜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
여권도 만들었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해방되는 그날만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