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한 첫 번째 덕질
그해 여름에 우린 가슴 몽글한 추억을 함께 공유했었다.
딸과 나의 폰 속에 같은 사진이 수 없이 체류했던 그 시절, 그녀는 고1 이이었다.
그녀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상위권 인서울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 알려진 곳 중 하나다.
그만큼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지원하는 학교인 셈이다.
그녀도 공부 좀 해보겠다고 입학은 했는데, 첫 중간고사에서 2.8점 문항 하나 틀린 영어과목이 내신 3등급을 받았다.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실감하며 우리가 미친 짓을 한 게 분명하구나 싶었다.
진짜 조금도 더하지 않고 앞날이 선명하게 예상되는, 딱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의 연애사까지 공유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뜸해졌다.
수시로 마주 앉아 나누던 대화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다.
“수행평가는 왜 이렇게 많은 건데?”
‘다들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도 못하고…’
“지겨워 죽을 거 같다 “
‘매일 듣는 엄마도 지겨운 걸 알까’
”나는 수학머리가 없는 게 분명하다”
주로 이런 식의 끊임없는 불평이 대부분이었다.
‘또 시작인 건가!’
‘뭐 1년은 다니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수학 선행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님이 말했잖아요’
삐뚤어진 문장들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지만 달팽이 더듬이 같은 예민함으로 날 세울 것이 분명하니 애써 눌러 담아야 했다.
틈만 나면 마주 앉아 시시덕거리던 우리였는데 혼자서 추억팔이하는 시간만 늘어났다.
그녀에게 아침을 알리는 내 태도도 굉장히 소심해졌다.
그녀의 방문을 열고 기분을 건들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작은 몸놀림으로 흔들어 깨워야 했다.
그러곤 방을 나가기 직전 작은 목소리로 한 번 더 “일어나야지~” 하고 말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연어 샐러드 괜찮아? “라며 좋아하는 메뉴를 언급해 댔다.
그녀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깨우기 위해 적절한 화법이 저절로 생겨났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딛는 발꿈치 강도만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각도만으로 그녀의 기분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복지수가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건 아이돌을 선발하는 TV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부터였다.
매주 금요일 밤이 되면 그녀는 세상 행복 다 가진 표정으로 그를 맞이할 TV 앞에 앉았다.
도파민을 도와줄 야식까지 세팅이 끝나면 그녀의 쉼 없는 재잘거림이 시작되었다.
‘오.., 오랜만이다, 저 바쁜 입모양, 고등학교 입학 전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인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움찔움찔거렸다.
“엄마 쟤가 내 최애야!”
“인간적으로 진짜 잘생겼지? “
그녀의 눈빛이 귀엽게 빛났다.
“연습생 1개월 찬데, 완전 잘해”
“노베이스인데 금방 무대 장악했잖아! “
혼자 입틀막을 하고 막, 내 허벅지를 때리고, 같이 반응해 달라고 눈빛을 쏘아대고…
주로 이런 식의 진귀한 광경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다 보면 프로그램이 끝이 났다.
나도 한때 해본 짓이라 끝남 뒤에 오는 그 여운을 잘 안다.
그녀가 제정신을 찾을 때까지 감정 나누는 후기 타임도 같이 가져주며 그런 몇 번의 금요일을 보냈다.
그렇게 우린 마주 앉는 시간이 다시 잦아졌다.
그 틈에 학교얘기도 조금, 선생님 얘기도 조금 끼워했더니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졌다.
그런 함께하는 대화가 좋았고 이유가 무엇이든 여유 있어진 딸의 모습이 보기 좋아 시작한 거 같다.
함께 덕질한 이유를 꼽자면 말이다.
내 차 안엔 늘 그녀의 최애그룹 노래가 흘러나왔고 학교 갈 때, 학원 마치고 올 때 우린 자연스럽게 덕질을 했다.
집 오는 길에 볼 수 있도록 영상이나 사진을 모아다가 보여주는 내가, 괜찮은 엄마가 아닐지라도 좋았다.
지금은 치명적인 척 함께 공감해 주는 엄마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애써 핑계를 대보기도 했다.
쇼콘도 같이 보러 가자는 그녀는, 내 눈빛의 암묵적 답을 안다는 듯 비장하기까지 했다.
“공부 열심히 해볼게~! “
딸의 눈빛이 귀여웠다.
”이제 긍정적인 말 많이 할게~“라고
내가 참고 참으며 겉으로 내뱉을 뻔한 말을 편하게 하는 그녀가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그녀의 여유를 찾아주는 건 그냥 생각을 같이 해주는 것, 그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수없이 몰아치는 수행평가와 시험이라도 그냥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유연하게 잘 지내주면 좋겠어서!
그 마음이 같아질걸 믿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덕질에 그렇게까지 진심이었던 게 분명했다.
그 믿음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속셈이라 할지라도 나는 딸에게만은 괜찮은 엄마가 되어있었다.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딸을 위한 특별한 경험이었고 내가 주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내가 해주었던 덕질이 남들의 초점에 있는 표면적인 뜻이 아니라 그녀에게 심리적 자원으로 쌓여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녀가 살면서 문득문득 떠올려 줄 내 진심!
“엄마 그때 고마웠어! “ 라며 뜬금없이 전화해 줄 그녀를 기다리는 삶이 기대되었다.
다음 글의 주요 문장들)
결국 그 TV프로그램에서 선발된 아이돌그룹의 쇼콘도 같이 보러 갔다는 거!
평일인데 덜컥 수용해 버린…
티켓팅에 손이 저렇게 빠른 딸이라니 놀라웠다.
그녀 것만 앞자리고 내 자리 티켓팅은 현저히 느려진 저 손스냅 보소
왜 실망하지? 나 덕질에 진심이었던 건가?
화려한 콘서트 입성을 뒤로하고 서울역에 덩그러니 버려진 모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