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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린 Oct 25. 2022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부모가 된다는 선택

기후변화와 가족계획, 그 사이

몇 년 전, 개인의 입장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다양한 매체에서 비슷한 기사들이 실렸던 적이 있었다. ("환경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 "기후변화로부터 지구 구하려면 아이를 적게 가져야") 그때는 물론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으나, 글을 읽어 내리며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자기 의지로 적극적인 환경 파괴자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명제 역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읽었던 글이지만, 마음에 잔상이 꽤 오래도록 남았다. 나름대로 또래와는 다른 소박하고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고 있고, 분리수거를 강박적으로 하며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로서는 자신이 기후변화 부인자들과는 종자부터 다르며, 믿는 것을 넘어 행동하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점이 나의 자존감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던 터라, 길지 않으나 확신에 차 있던 그 글들이 꽤나 진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자라오면서, 나는 한 번도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한 적이 없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고, 나름의 삐걱거림과 불편함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화목한 가정의 틀 속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한 평범한 성인으로 자라나며 (동시에 35세 이상 임신의 위험성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오면서),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나만의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홍콩이라는 대도시에 살게 되면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많은 여성들과 함께 근무를 하면서, 쇠퇴해가는 홍콩의 정치적 상황과 점차 양극화되어가는 세상사를 지켜보며,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암울한 정보를 더 많이 접하며 주춤할 때도 있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당연하게 원해온 나만의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꺼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했다. 임신을!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환경파괴의 행위에 동참할 예정이고, 갈수록 험난해지는 세상에 또 한 명의 인간을 그야말로 무에서 "창조"해 그 인간에 의지에 상관 않고 이 세상에 내보내는 무책임한 짓을 하려고 한다.


아주 자발적으로, 치밀한 계획 하에, 나는 임신과 출산을 선택했다.


몇 년이 지나 아이를 갖게 된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나는 환경을 위해 출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격하게 공감하는 단락의 인용으로 나의 대답을 대신한다:


"지구온난화가 이런 식으로 소비자 계층 개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물론 잘 사는 사람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묘한 금욕적 자부심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지나치게 좁은 시야로 바라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환경의 몰락은 불가피한 미래가 아니라 선택권이 남아있는 미래다.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 아이들 하나하나가 나올 때마다 그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이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위한 세상, 그들과 함께하는 세상,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한 세상을 만들도록 손을 보탤 것이기 때문이다. 

- 데이비드 월러즈 웰즈 저 <2050 거주불능 지구> 증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결국은 낙관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아이가 태어날 이 세상이 나쁘지 않은 곳이며, 우리가 함께 좀 더 괜찮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곁을 가능한 오래도록 지키며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힘닿는 한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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