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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아빠 Jan 27. 2023

남편의 육아가 필요한가요?

"네, 반드시 필요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남녀평등 시대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육아는 아직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큰 부담이다.

남편의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 사용률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 사용률은 현저히 낮고,

여성들이 출산 후 겪는 경력 단절과 육아로 인한 우울증 등 많은 문제들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군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남성들이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을 사용할 경우  받게 되는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하다. 나조차 그랬다. 출산을 경험하지 못했던 시절 육아시간을 쓰는 간부들을 마치 일을 남들에게 던지고 칼퇴하는 사람들로 여겼으며, 육아휴직을 쓰는 간부들은 업무를 피하기 위해 쓰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 쓰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산 후,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기상시간부터 취침시간까지. 아니 정확히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내가 출산 후 성하지 못한 몸을 가누고 갓난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며 모든 집안일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장모님께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을 쓴다는 것은 곧 상급자로부터 낙인이 찍힌다는 것과 같았기에 차마 사용하지 못했다. 심지어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기에 아내는 점점 지치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도 한계가 왔는지 친정에서 기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후 꽤 적지 않은 기간을 홀로 지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들이 나를 잊지는 않았는지, 아내와 장모님은 괜찮으신지 많이 걱정됐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육아에 대한 '무관심'이다. 따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고, 아이에 대한 애정이 커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족을 찾아갔을 때, 우리 아이가 나를 볼 때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자기위로를 했다.


 그렇게 18개월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그 중간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내 아내는 아이가 아직 어려 집에서 보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린이집은 보내지 않았다. 아내의 일상은 그야말로 독박유아 그 자체였다. 내가 육아를 해보지 않으니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던 와중, 새로 바뀐 지휘관께서 나에게 육아시간을 쓰라고 권하셨다. 거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직책에 있었고 특히 장교들은 육아시간을 쓰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지휘관께서 "나도 써야하니까, 너도 써!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우리 휘하의 간부들도 눈치 안 보고 사용할 것 아냐?"라며 무조건 쓸 것을 지시하셨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군에서 육아시간은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2시간 유급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2시간 조기퇴근이 가능하다. 사실 퇴근보다는 아내와 '육아 바통터치'를 하는 것이었기에 또 다른 출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하게 가끔은 부대에 있는 것이 더 편할 적도 많았던 것 같다. 그만큼 육아는 정말 어려웠다. 한시도 아이에게 눈을 떼서는 안 되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부터 기저귀 갈기, 밥 먹이기, 이 닦이기 등 굉장히 단순한 일 같지만 군에서 '특급전사'였던 나도 체력이 쭉쭉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또 다른 출근을 한지 두 달이 지나고 세 가지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첫째는, 원래 내가 출근할 때 대충 인사하고 엄마랑 놀았던 아이가, 내가 출근을 한다고 하니 가지 말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짠하게 아프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둘째는, 내가 아이를 온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이다. 육아를 하면 할수록 아이에 대해 점점 알아가고, 아이의 조그마한 변화와 성장에도 감동하며 행복함을 느꼈다. 출근 후에도 아이가 그립고, 아이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없게 웃을 때도 많았다. 셋째는, 아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육아시간을 쓰기 전,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 아내가 왜 저렇게 예민해져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극도로 피곤해하고 종종 신경질을 부리던 아내가 밉기도 했다. 하지만, 육아를 해보니 성격이 유순하기로 유명한 나도 예민해져 있었다. 육아를 하며 아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사회생활을 했지만 군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고, 자유롭게 나갈 수도 없는 관사에서 홀로 육아를 해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육아를 하고 나니 군대의 '병영생활 룰(임무분담제)'처럼 우리만의 육아의 파트가 나뉘어졌다. 아침에 기저귀를 갈고 가볍게 씻기는 것, 퇴근 후 아내와 육아교대 후 목욕시키기, 저녁 설거지, 아이 이 닦이기 등 중요한 과업(?)들을 내가 거의 전담하게 되었다. 최근 아내에게 "여보, 내가 육아의 몇 퍼센트 정도 함께하는 것 같아?"라고 물었다. 다행히도 아내는 "글쎄. 한 50% 정도 될 것 같은데? 정말 많은 도움이 돼!"라고 답해주었다.


 아내가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남편의 육아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에게도,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도, 그리고 아이를 육아하며 성장할 나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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