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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Nov 15. 2024

F18. 새 부리와 트렌치

 실리콘이 반도체 재료의 총아로 떠오르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우수한 성질을 갖고 있는 이산화실리콘 막의 존재이다. 이 막은 MOS 트랜지스터 구조의 산화막(oxide thin film)으로서 좋은 유전체 특성을 보일 뿐 아니라 전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좋은 절연체의 특성을 보인다. 수증기나 산소 가스의 존재 아래 실리콘 웨이퍼를 1,000℃ 이상의 고온에 장시간 유지하면 아주 쉽게 양질의 이산화실리콘 박막이 형성된다. MOS 트랜지스터가 세워져 있는 지역을 능동 지역(active region)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의 사방을 절연체로 둘러싸이게 해서 다른 능동 지역과 분리(isolation)하고 있다. 분리의 목적으로 이산화실리콘 막이 한때 유용하게 쓰였다. 이 산화막을 일명 필드 산화막(field oxide)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사병으로서 야전에서 소총수로 근무하던 젊은 병사가 제대하고 반도체 관련 연구하는 데에 들어와서 그 산화막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야전 교본을 field manual이라고 하지 않던가?


 능동 지역에 산화막이 형성하지 못하도록 적절하게 마스킹(masking)을 하여도 경계선을 타고 산화막이 성장하게 되는데, 이 부분의 단면을 SEM으로 관찰하여 사진을 찍으면 마치 무슨 예술 사진같이 보인다. 이렇게 생긴 지역을 bird’s beak 혹은 ‘새의 부리’라고 부른다. 필드 산화막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라고 당시에는 인식되었다. 새 부리가 형성되는 지역의 산화막을 제거하기 위하여 불산 용액으로 에칭 하는 등의 공정이 추가되었다. 양질의 산화막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고온에 실리콘 웨이퍼를 유지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있는 불순물의 확산이 일어나서 이것을 고려하여 전체 공정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에 불순물의 도입이 상온에서 이루어지는 이온 주입기(ion implanter)가 적용되고, 낮은 온도에서 박막을 입힐 수 있는 플라스마 촉진 화학 기상 증착(plasma enhanced chemical vapor deposition: PECVD) 기술이 개발되었다. 또한 집적 회로의 축소화가 진행되어 능동 지역의 크기와 필드 산화막의 크기를 대폭 축소할 필요가 생겼다. 능동 지역의 사방에 참호 파듯이 실리콘 웨이퍼를 깎아내고 그 공간을 PECVD로 형성된 이산화실리콘 막으로 채우는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사일레인(silane, SiH4)이라는 실리콘을 포함하고 있는 기체와 산소 기체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불어 놓고 웨이퍼 집게(holder)에 전기를 통하면 플라스마가 형성되면서 반응이 일어나 공기 중에 이산화실리콘(SiO2) 고체 입자가 형성되고 이 고체 입자들이 실리콘 웨이퍼 위에 겨울철 밤에 눈 내리듯이 쌓인다. 실리콘 웨이퍼를 PECVD 반응로에서 꺼내서 트렌치에 쌓인 이산화실리콘만 남기고 기타 지역에 쌓여 있는 이산화실리콘을 제거하면 단위 공정이 끝난다. 이 산화막을 평가하여 분리 지역의 절연 특성이 충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능동 지역이 들어설 지역의 사방(四方)을 파내는 작업을 트렌치(trench) 형성이라고 부른다. 이는 야전에서 한 고지를 지키기 위하여 산허리를 뱅 둘러서 병사들이 야전삽으로 참호를 파는 작업을 연상(聯想)시킨다. 지금은 전쟁에서 야전의 개념이 많이 바뀌었지만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 시에 병사들이 참호를 파는 일이 잦았다. 능동 지역 주변에 트렌치를 파고 PECVD로 산화막을 저온에서 형성하는 공정은 일대(一隊) 파란(波瀾)을 일으켰다. 집적 회로(IC)의 집적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공정 온도를 대폭 낮추고 전후 공정을 더욱 쉽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에너지가 전기로 공급되어 사용하는 전기량은 크게 줄지 않았을지라도 팹(FAB) 안의 열에너지를 상당히 줄였고 확산 공정의 역할이 대폭 감소되었다.

     

 이렇게 반도체 집적 회로 제조공정에 적용된 트렌치란 말이 의복 즉 패션 업계에 등장하였다. 트렌치코트(trench coat)라는 외투가 남성복뿐만 아니라 여성복의 대명사로 패션계를 휩쓴 적이 있다. 눈비 와서 추운 참호에서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군복으로 19세기에 처음 개발되고 보급되었으나 평화 시대에는 시장에서 일반인에게 풀어서 크게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군의 영향으로 육군에서는 일반 병사들에게는 ‘판초 우의’가 제공되지만 ‘간부 우의’의 형태로 트렌치코트가 제공되고 있고, 해군과 공군에서는 장병들에게 지급되는 우의가 트렌치코트의 형태라고 한다. 이러한 경향이 여성 패션계에도 영향을 주어 두툼한 모직으로 조금 칙칙한 색감에 단추 대신 막대기와 끈으로 여미는 형태의 여성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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