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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3. 적외선(Infrared ray)

IR

by 포레스트 강

적외선은 태양이 방출하는 빛을 프리즘으로 분산시켜 보았을 때 적색의 끝보다 더 바깥쪽에 있는 전자기파를 말한다. 영어로는 적색(red)보다 아래에 있는 빛이라는 의미로 infrared ray, 짧게는 IR이라고 부른다. 파장 0.75∼3㎛의 적외선을 근적외선(近赤外線, near IR), 파장 3∼25㎛의 것을 적외선, 파장 25㎛ 이상을 원적외선(遠赤外線, far IR)이라고 한다. 한동안 방송에서 찜질 기구를 광고할 때 원적외선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잘못 들으면 근원 원(原)이나 으뜸 원(元)으로 잘못 알기 쉬우나 여기서 쓰이는 글자는 멀 원(遠) 자이다. 빛의 파장 스펙트럼에서 적외선의 파장이 적색(R)보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를 기준으로 세분하여 명명하고 있다.

적외선은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에 비해 강한 열작용의 특징이 있어서 열선(熱線)이라고도 한다. 태양이나 발열체로부터 공간에 전달되는 복사열은 주로 적외선에 의한 것이다. 적외선이 강한 열 효과를 보이는 이유는 적외선의 주파수가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분자의 고유진동수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물질에 적외선이 부딪히면 적외선을 이루는 광자의 에너지가 효과적으로 물질에 흡수된다. 특히 액체나 기체 상태의 물질은 각각의 물질에 특유한 파장의 적외선을 강하게 흡수한다. 이 흡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물질의 화학적 조성, 반응과정, 분자 구조를 정밀하게 추정하는 수단으로 쓰는데, 이것을 적외선분광학(IR spectroscopy)이라 한다.

우리말에 ‘햇빛’이 있고 또 ‘햇볕’이 있다. 이 두 말을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우리 선조들의 조어 능력이 참 과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해로부터 오는 햇빛은 에너지 스펙트럼 중에서 이른바 가시광선을 통하여 전달되는 것으로 우리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한다. 햇볕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전자기파 중에서 적외선으로 인하여 따뜻함을 느낀다는 뜻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햇볕으로부터 얻는 따뜻함을 당연하다고 여기듯이 햇볕정책의 수혜자들은 속으로 고맙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자존심이 있어 그것을 겉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요즘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한자어로 된 ‘태양광’과 ‘태양열’이 있는데, 순우리말로는 각각 ‘햇빛’과 ‘햇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봄볕에 김 밭맬 때는 예쁜 딸내미 내보내고, 가을볕에 고추 딸 때는 미운 며느리 내보낸다 ‘라는 속담을 옛날 어른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음미하며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 관찰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것이 바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적외선과 자외선의 성질을 설명하는 말이 아닌가? 농경사회에서는 일손이 귀하니까 여자든 남자든 직접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오뉴월에는 밭에 곡식보다 잡초가 더 잘 자라는데, 이 잡초 제거 작업을 김 밭맨다고 하였다. 무더위에 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호미로 김을 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것이 여자에게는 초가을에 고추밭에 서서 빨간 고추 따는 일보다는 쉬운 작업이라는 의미이다. 초가을에 온도는 그리 높지 않아도 햇빛이 강한데 이때 자외선이 많이 떨어져서 고추 따러 내보낸 며느리의 얼굴이 검게 그을린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가 한여름에 느끼는 태양의 열기가 직접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렇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음을 종종 본다. 그런 분들에게 필자는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때 비행기 밖의 온도가 얼마인지 아십니까?’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앞 좌석의 뒤에 자기 눈높이로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다. 요즘은 VOD(video on demand)로 되어 있어서 각자 원하는 메뉴를 골라 보거나 들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일반 객실 앞 벽에 큰 화면이 설치되어 있어서 대낮에도 창문에 커튼을 치고 여객 모두가 같은 영화를 보았다. 쉬는 시간에 가끔 화면에 ‘비행 정보’라고 뜨는데, 비행기의 고도, 속도, 풍속, 외기온도 등이 자막에 나온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비행 고도는 대략 지상 10km, 외기온도는 섭씨 영하 50도 정도이다. 한겨울에도 지상에서는 영하 10도만 내려가도 춥다고 그러는데, 나는 지금 냉동고에 갇혀있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꽤 오래전에 하와이에서 소형 여객기의 지붕이 날아가는 사고가 있었다. 만약 지금 비행기의 덮개가 날아가면 승객들은 산소가 희박해질 터이니 금방 죽겠고, 곧 동태처럼 얼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안인 여기보다 태양으로부터 약 10km 더 떨어져 있는 지상의 온도가 확실히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표의 온도가 지상 10km 상공의 온도보다 높을까? 이것은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태양으로부터 도달하는 여러 복사선은 지표 근처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2)와 수증기(H2O) 등의 분자에 의해 흡수된다.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한 분자들은 들뜬상태에 있다가 금방 원래의 바닥상태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 상태 전이에 따른 에너지의 차이가 이번에는 열의 형태로 방출된다. 이는 위의 태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로 아래의 지구 표면에 있는 물질들에 의해 지구의 대기에 열이 축적된다는 의미이다. 모든 물체는 처해 있는 온도에 따르는 에너지를 복사한다, 즉 내보낸다. 물체가 복사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발할 수 있을 만큼 뜨거워질 필요는 없다. 상온에서 물체가 방출하는 복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다.

우리 인간은 적외선을 감지 못하나 동물들은 야간에 활동하고 먹이를 잡는 사실로 미루어 적외선으로 물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머리를 써서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었다. Mercury-Cadmium-Telluride(HgCdTe) 기반의 반도체 물질을 적절히 가공하면 적외선을 감지하거나, 적외선을 발광하는 소자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소자를 활용하면 적외선 카메라가 가능하여 야간에 동물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고 휴전선 일대에 CCTV(Closed Circuit TV)를 설치하면 추운 겨울밤에도 따뜻한 막사에서 화면으로 철책선을 경계할 수 있다. 공항에서는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적외선 카메라 앞을 지나가게 하여 높은 체온의 사람을 찾아내고 있다.

적외선은 자외선이나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어 미립자에 의한 산란이 적어서 공기를 비교적 잘 투과한다. 대기 중에서의 적외선의 투과성을 이용한 것으로는 항공사진측량, 원거리 사진, 야간촬영, 거리 측정, 적외선 감시장치 등이 있다. 적외선이 가시광선과 다른 반사율을 가지고 있다는 광학적 특성을 이용하여, 화폐, 증권, 문서 등의 위조검사나 감정에 적외선 사진을 활용한다. 또 열 효과 특성을 이용한 각종 재료, 공산품, 농수산물의 건조와 가열에 응용하는 등 산업과 실생활에서 널리 쓰인다. 의료분야에서는 소독, 멸균과 관절 및 근육 치료에 근적외선이 많이 쓰이고, 파장 10㎛인 적외선 레이저빔은 외과수술, 종양의 제거, 신경의 연결 등에 실용화되고 있다. 거실의 가전제품용 리모컨이 적외선 레이저 빔을 이용한다는 것은 이미 앞글에서 보였다. 그밖에 자동 경보기, 문의 자동개폐기 등에 적외선과 검출기를 조합하여 쓰기도 한다.

적외선 검출에는 사진 건판, 광전지, 광전관 및 광전도 검출기 등이 쓰이나, 광전도 검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근적외선의 영역까지만 검출할 수 있다. 즉 건판과 광전관은 파장 약 1.2㎛, 광전지는 파장 5㎛ 이하의 적외선만 검출할 수 있다. 더 넓은 영역의 적외선을 검출할 수 있는 검출기로는 열전기쌍, 볼로미터, 뉴매틱 검출기(pneumatic detector : Golay cell) 등이 있으며, 이들을 열적 검출기라 한다. 열전기쌍은 적외선에 의해 생기는 열을 기전력으로 변환시켜 적외선을 검출하는 방법이며, 볼로미터는 열에 의한 전기저항의 변화를 이용한 것이다. 뉴매틱 검출기는 열에 의한 기체 팽창에 따른 기체의 압력변화를 이용한 것이다.

보통의 텅스텐 백열전구에서 방출되는 복사는 대부분 적외선이며, 가시광선은 에너지 총량의 2∼3%에 불과하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빨간색 빛이 느껴지고, 전구 표면을 만지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텅스텐 필라멘트 전구는 파장 약 3.5㎛까지의 근적외선을 방출하며, 더 넓은 파장 영역의 적외선원으로는 가열된 흑체(黑體: 0∼3,300℃)와 네른스트 전구가 있다. 또 매우 높은 단색성(單色性)과 강도를 가진 적외선 레이저가 연구용, 공업용, 의료용 적외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0.83 μm(GaAs 반도체 레이저), 1.3㎛, 1.06㎛(Nd-YAG 레이저), 2.8㎛(HF 레이저), 5㎛(CO 레이저), 10.6㎛(CO2 레이저), 16㎛(SF6 레이저)를 방출하는 적외선 레이저를 비롯하여, 수십~수백 ㎛ 원적외선의 발진 파장을 가지는 여러 가지 재료의 레이저가 있다.

여담으로 암시경(暗示鏡) 등의 특수 용도로 사용되는 적외선램프의 경우 필터가 부착되어 있어 적외선만 방출되고 가시광선은 차단되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는 램프가 켜졌는지 안 켜졌는지를 구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군사용 적외선램프, 자동문 등의 센서에 달린 적외선 신호 방출기, TV 리모컨에 달린 적외선 신호 방출기, 적외선 송수신기 등에서는 가시광이 전혀 방출되지 않고 적외선만 나온다. 찜질방 등에서 사용하는 적외선램프에서 보이는 새빨간 빛은 그냥 붉은색 가시광선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내조명을 할 수 있고, 적외선이 나오고 있다는 적극적 어필(?)을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거의 모든 군용 장비는 열을 발산한다. 하다못해 사람만 해도 36.5도 생체난로이니 적외선 탐지기나 열 영상센서에 걸리기 마련이다. 스텔스(stealth)라고 하면 보통 레이더에 대한 스텔스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열에 대한 스텔스도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항공기의 경우에는 레이더 유도 방식의 미사일 못지않게 적외선 유도 방식의 미사일도 큰 위협이다. 또한 일부 전투기들은 적외선으로 적 항공기를 탐지하는 IRST(Infra-Red Searching & Tracking)를 탑재하고 있으므로 전파를 이용하는 레이더에 대한 스텔스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열은 기수(機首) 부분에서 공기 압축과 공기 마찰 등에 의해 동체 표면에 발생하는 열과 엔진에서 직접 나오는 배기열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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