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2.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
Seeing is believing.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 요한복음 20장 29절 (John 20 : 29)
우리는 어떤 사실을 귀로 듣기만 해서는 믿지 않고, 직접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인 믿음뿐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도 눈으로 확인해야 믿으려 한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영역의 현상도 가능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광학적 이미지를 선호한다. 축구, 육상 등 스포츠에서 어려운 판정은 비디오 영상에 의존한다. 비싼 의료용 진단장치에서도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있어야 의사는 안심한다. 그것을 환자나 보호자에게 제시하고 설명하여야 설득력이 있다고 믿게 된다. 이 점에서 실험 결과에 의존하는 자연과학자도 비슷하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관련 논문에서는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 SEM) 사진을 제시하여야 제대로 실험했다고 저자가 주장할 수 있다. 한자 말로 일목요연(一目瞭然)하다는 말이 있다. 한눈에 보고 환히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다는 뜻이다. 요즈음은 육성이나 전화로 통화한 내용을 녹음하여도 증거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그러한 기계가 없던 시절에 백 사람의 전언을 듣느니 한번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믿음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
이러한 인류의 속성상 눈으로 본 광경을 기록해 두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 같다. 그런 노력이 회화 또는 미술로 발전했다. 전쟁, 행사, 인물의 모습을 돌이나 종이 위에 그려 두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시대에는 도화서(圖畫署)란 관아를 두어 화원(畫員)을 육성하고 주요 궁궐 행사를 묘사한 그림이나 국왕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옛날에 사람의 모습을 남기는 수단은 초상화가 유일했지만 그림의 특성상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귀족이나 부자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온 가족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여러 조합과 자세로 찍어 둔다. 가족 내에서 결혼식이나 고희연을 하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둔다. 그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게 발전한 게 바로 사진이나 동영상이다.
사진이란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사진은 광원에서 온 광선을 반사하는 물체의 광선을 사진기 렌즈로 모아 필름, 건판 따위에 결상(結像)을 시킨 뒤에, 이것을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음화(陰畫)를 만들고 다시 인화지로 양화(陽畫)를 만들어 사진첩 혹은 앨범에 보관한 그림을 의미한다. 사진(寫眞)이란 한자어로 진짜 모습을 그대로 베낀다는 뜻이다. 영어로 photography는 ‘빛’을 뜻하는 ‘photo’와 ‘쓰다’라는 의미의 ‘graphy’의 합성어로 1839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리학적으로 사진을 정의하면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감광성 재료 위에 기록하여 얻은 그림'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감광성 재료의 개발이 사진의 발달을 좌우하였다. 사진기 혹은 카메라는 빛을 모아 초점을 맞추어 필름이나 CCD 또는 CMOS 같은 반도체 이미지 센서에 상을 맺히게 한다. CCD는 전하결합소자(charge coupled device)의 약어로 빛을 전하로 변환시켜 화상을 얻어내는 초창기의 디지털카메라에서 많이 사용되던 반도체 센서이다. 한편 CMOS는 상보성 금속 산화막 반도체(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의 약어로 마이크로프로세서나 메모리 등 디지털 회로를 구현하는 반도체 소자의 구조에 관계되는 말로 이를 이용하여 광신호를 촬상하고 기록할 수 있음이 알려지면서 디지털카메라 등에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일반화되고 저렴하게 보급된 사진 관련 기술은 대략 200여 년 전에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원래 사진기는 회화의 스케치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며 19세기 들어 광학 기술과 화학의 발달로 획기적인 발전이 있게 되었다. 초기에는 사진 한 장을 찍는 데에 무려 6~8시간이 걸려서 이 방법으로는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풍경 사진만 찍었다고 한다. 그 뒤 1839년에 ‘은판 사진법’이 개발되면서 한 장을 찍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20분으로 줄여졌고, 이 때문에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덕분에 1840~50년대에 살아있던 서양의 유명인들이 초상화가 아닌 사진으로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1835년)에 영국에서 ‘종이 인화법’이라고 감광 처리된 종이를 이용한 인화의 개념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본격적으로 복제 가능한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진의 시초라고 할만하다. 1851년 영국에서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이 개발되어 사진의 획기적인 개량을 가져왔다. 이 발명으로 초기의 ‘은판 사진술’이나 ‘종이 인화법’보다 노출시간을 수십 초가량으로 줄이는 데 성공하였고, 음화(陰畵)에서 양화(陽畵)로 인화하는 과정도 간략화시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1880년대에 미국의 이스트먼(George Eastman, 1854~1932)은 롤필름(roll film)을 발명해서 사진 대중화의 길을 텄다. 그는 미국 로체스터에 이스트만 코닥(KODAK) 사를 설립하여 전문 공장을 건설하고, 롤필름과 코닥 카메라를 생산하여 판매하였다. 당시 25달러짜리 코닥 필름이 들어있는 코닥 1호 카메라에는 100장의 필름이 들어 있었는데, 100장을 다 찍고 10달러와 함께 코닥사에 우편을 보내면 사진을 다 인화해 주고 새 필름을 넣어주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개념의 사진 기술을 선보였다. 이로써 현대적인 사진이 완성되었고, 코닥사의 필름을 초기 영화 제작자들이 사용함으로써 영화 산업이 태동하게 되었다.
1928년에 코닥 사는 천연색(컬러) 필름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컬러 사진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본격적인 컬러 사진의 대중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컬러 사진이 촬영은 가능했으나 현상이 비싸고 플래시 기술의 문제로 특별한 순간에만 쓰는 사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일본은 후지필름 등을 통하여 미국에서 사진 관련 상품과 기술을 도입하였다.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부터 사진이 도입되었으나 일반인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사진에 대한 눈이 뜨이기 시작했고, 컬러 사진은 1970년대 중후반에야 그 수가 늘었고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대중화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하고, 사진은 기존의 필름을 사용한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으로 분화되게 된다. 디지털 사진이 화소 성능 향상과 더불어 아날로그 사진보다 선명하고 깨끗한 상을 얻을 수 있고 아날로그 사진보다도 복제와 재생산이 쉽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로서는 예전의 필름 사진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사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색채나 질감을 중시하는 마니아층의 수요가 있어, 아날로그 사진의 존재 가치가 완전히 퇴색되지는 않을 듯하다.
조선 말기에 사진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진기가 영혼을 뺏어간다고 믿어서 사진 찍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듯하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영혼을 빼앗긴다는 믿음 때문에 사진 찍히는 사람들의 눈빛이 매우 강렬하단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영혼이 눈을 통해 왕래했다는 믿음 때문에 눈을 일부러 강하게 뜨고 있지 않았나 싶다. 필자의 유년 시절 기억으로는 싸진(sergeant)라고 불리는 미군 하사관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마을 풍경이나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 찍을 때 사람들의 두려움은 없었고, 며칠 뒤에 그 병사가 동네로 나와서 인화해 온 사진을 주인공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렇게 찍힌 우리들의 사진이 미국 어디선가 한동안 전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참 뒤에 우리 민간 마을에도 사진관이 생기고 사진관 유리창에는 DP&E란 문자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커서 이 말이 현상(development), 인화(print), 확대(enlargement)의 약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울 등 도회지에는 사진관이 꽤 많았었다. 학생증이나 신분증에 붙이는 증명사진은 꼭 사진관에서 찍었고, 결혼식이나 할아버지 회갑 등 집안 행사에는 미리 사진관에 가 예약을 하였고, 그날이 되면 사진 기사가 커다란 플래시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출장을 나왔다. 그 뒤 생활이 나아지면서 집마다 소형카메라를 마련하고, 사진을 찍어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사진을 찾았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사진을 인화하여 앨범에 꽂아놓는 일들이 줄어들고 기존의 사진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시중에 작은 사진관이 없어지고 대형화가 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사진관에 갈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증명사진도 자신의 힘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기존의 카메라는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다가, 인상 좋은 장면을 보면 바로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어 두면 되고 사진으로 인화할 필요도 없어졌다. 한동안 위세를 떨쳤던 미국의 코닥사나 즉석 사진의 폴라로이드사도 사세가 기울었다. 외국 여행을 갈 때도 휴대전화와 배터리 충전기만 챙기면 사진 찍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외국 관광지에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데, 중간에 현지 전통 복장을 한 젊은이가 와서 무어라고 시비를 건다. 관광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 사진을 찍었으니 모델료를 내라고 생떼를 쓴다. 경우는 다르지만, 서울에서도 지하철 등에서 남의 얼굴이나 신체를 맘대로 찍거나 SNS에 올리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처음에 사진은 회화의 복제 수단 정도로 여겨졌으나 사실성을 중시하던 기존의 미술이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미술계에서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작가의 독특한 관점, 감정, 생각을 나타내려는 사조들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사진 기술의 발전은 사진을 새로운 독창적인 예술 영역으로 대두하게 하였다. 사진을 찍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사진사, 예술 활동으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사진작가, 사진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을 사진가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순수사진작가(fine art photographer)는 보기에 아름답고 멋있는 사진을 찍으려는 상업사진(commercial photography)과 달리 무언가 예술적인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사진은 태생부터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예술과 결부되어 있다. 먼저 렌즈는 인간의 시야 한계나 인식을 넘어서 현실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어 카메라는 사람의 눈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카메라로 사진의 효과를 넣을 수 있고, 원시 혹은 근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카메라에는 줌(zoom) 기능이 있어 먼 데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둘째, 사진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 시점에서 재생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하면 사진은 현실성(reality)을 갖춘 기록 매체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감정이입 등을 일어나게 하며 현실에 대한 일종의 대리체험이 가능하다. 셋째, 사진은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대상의 모습이 무한히 변화될 수 있어서 찍히는 대상이 갖는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사진 관련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초기에 영화를 활동사진(motion picture)이라고 했듯이 사진을 여러 장 연속적으로 배열하면 우리 눈 혹은 뇌에 잔상이 남아 움직이는 영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영상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문자나 말로만 가능하던 이야기가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영사기에서 이 사진들을 일정한 속도로 돌리면 동영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무성영화라고 있어서 영상을 설명하거나 말소리를 대신 말해 주는 변사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 안에 문자를 넣거나 음성이 동시에 나오게 되는 기술이 나오고 등장인물의 대화나 배경을 말로 설명해 주는 성우라는 직업이 있었다. 요즘에는 배우들이 촬영할 때 동시녹음을 실시하여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아날로그 영화가 일반화되면서 극장이라는 장소에서 영화를 개봉하고 사람들은 이 영화를 관람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사람들에게 초상화 등을 그려주던 상업적 화가들은 극장의 광고판을 그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도심의 일류 극장은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서 걸었고 변두리의 삼류극장은 초라한 간판에 만족해야 하였다. 배우라는 인기 직업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이들을 스타(star)라고 불렀다.
이후 통신과 방송 기술의 발달로 레코드, 텔레비전 등 새로운 시대의 대중예술이 탄생하였고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예술의 복제 수단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각각 독특한 예술의 장르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도래로 영상의 기록과 전송이 용이(容易)하게 되고, 영상의 질도 무척 좋아졌다. 여기서 동영상 혹은 3차원 영상의 의미를 생각해 볼까 한다. 우리의 눈은 화폭이나 사진과 같은 2차원적인 화면을 인식한다. 한 화면을 한 컷(cut) 혹은 한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우리의 눈에서는 한 화면에서 각 요소를 스캐닝(scanning)하여 2차원적인 영상을 완성한다. 이러한 2차원적인 그림을 시간 축으로 연속적으로 연결하면 우리 눈은 잔상을 갖고 있어 동영상으로 느낀다. 여기에 녹음 기능을 동기화시키면 더욱 사실적으로 느끼게 되고, 이런 동영상을 저장해 두는 일을 녹화라고 한다. 우리가 의식의 세계에서 눈으로 보는 화면을 뇌에 기억해 둔다. 우리는 이 화면을 대부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뇌에는 그 영상 기록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고 그 영상 기록의 용량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