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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1. 자외선(Ultraviolet ray)

선 크림

by 포레스트 강

앞에서 전자기파 스펙트럼을 일명 맥스웰의 무지개라고 부른다고 했다. 보라색보다 짧은 파장의 빛을 가시광선의 보라(紫) 바깥(外) 쪽에 있는 빛이라는 뜻으로 한자어로 자외선(紫外線)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보라색을 초월하는 광선이란 뜻으로 ultraviolet(UV) ray라고 부른다. 자외선은 10~400nm의 파장을 가지며 주파수는 750 THz~30 PHz이다. T는 Tera로 10의 12승이며 P는 Peta로 10의 15승이다.

자외선은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나는 주파수를 지니므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의학적으로 각막을 제거하면 자외선이 청백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는 자외선 영역의 빛에 망막에 있는 세 가지 RGB 원추세포가 모두 반응하는데, 파랑(B) 원추세포가 더 잘 반응한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86세에 사망하여 같은 시대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나 고갱(Paul Gauguin, 1848~1903)에 비하여 장수하였는데, 말년에 시력으로 고생한 흔적이 그의 작품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그림에 푸른색이 많아졌는데 이것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곤충 대부분은 자외선을 볼 수 있다. 단색으로 보이는 꽃을 자외선으로 촬영해 보면 꽃의 중앙에 새로운 무늬가 나타나는 종류가 많은데, 곤충을 유인해 꿀을 제공하고 수분을 원활하게 하려는 것이다. 배추흰나비 같은 곤충은 사람이 볼 때는 암수가 똑같이 흰색이지만 자외선으로 찍어보면 수컷은 검게, 암컷은 희게 보인다고 한다. 자외선을 볼 수 있는 조류와 어류가 있으며, 포유류 중에도 고슴도치 등에 그런 종이 간혹 있다고 알려진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에너지가 커서 이를 오래 쪼이면 우리의 망막세포가 손상된다. 자외선은 사람의 피부를 태우거나 살균작용을 하며, 과도하게 노출되면 피부암에 걸릴 수도 있다. 지상으로부터 약 13∼50km 사이의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은 태양광선 중 자외선을 차단함으로써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과학적으로 보면 자외선의 광자가 지구의 성층권에 들어오면 산소(O2) 분자와 충돌하여 오존(O3) 분자를 만들어 전리층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기오염이 심해지면서 오존층이 파괴되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증가하여 사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자외선은 1801년 독일의 화학자 리터(Johann W. Ritter, 1776~1810)에 의해 자외선이 가지는 사진 감광작용으로 인하여 처음 발견하였다. 극단적으로 파장이 짧은 자외선은 X선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자외선은 에너지가 높아 화학작용을 할 수 있어 화학선(化學線)이라고도 부른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UV 복사선을 오존층과의 반응 여부로 UV-A, UV-B, UV-C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UV-A : 315~400nm, 혹은 0.32~0.40㎛의 파장. 주파수 750 THz~950 THz. 파장이 비교적 길어 가시광선에 가까운 끄트머리 부분이어서 이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오존층에 흡수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해롭지 않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안 그렇다. 피부를 태우는 주역은 UV-B이지만, UV-A는 피부를 벌겋게 만들 뿐 아니라 피부 노화에 따른 장기적 피부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자외선에 민감한 사람은 겨울철에도 선크림(sun cream)을 바르는 등의 대비를 해두어야 한다.


UV-B : 280~315nm의 파장. 주파수 950 THz~1.07 PHz. 여기서부터는 우리 눈에 완전히 안 보인다. 대부분은 오존층에 흡수되지만, 일부는 지표면에 도달한다. 유리는 통과하지 못하므로 실내에서는 안심해도 된다. UV-B는 동물의 피부를 태우고 피부 조직을 뚫고 들어가며 때로는 피부암을 일으키는데, 피부암 발생의 원인은 대부분 UV-B와 관련이 있다. 자외선이 인체에 도달하면 표피층 아래로 흡수되는데, 이 해로운 광선에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인체 면역 작용이 발동한다. UV-B는 피부에서 인체에 필수적인 비타민 D를 형성한다. 자외선에 노출될 때 멜라닌이란 검은 색소를 생성하는데 그것이 자외선 일부를 흡수한다. 백인종과 같이 멜라닌을 적게 생성하는 사람은 UV-B에 대한 자연적 보호막도 적은 셈이다.


UV-C : 100~280nm의 파장. 주파수 1.07 PHz~3 PHz. 성층권의 오존층에 거의 모두 흡수된다. 파장 영역이 0.20~0.29㎛인 자외선 중 UV-C는 염색체 변이를 일으키고 단세포 유기물을 죽이며, 눈의 각막을 해치는 등 생명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우리 생활에서 자외선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벌레를 유인하는 등(燈)에 쓰이고, 식기나 식수를 살균하는 데 사용된다. 자외선을 비출 때만 보이는 특수 염료로 비밀표식을 만들고, 자외선으로 그것을 확인한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 신분증이나 고액권 지폐, 우표, 상품권에 자외선을 비추면 무늬가 나타나는 특수 코팅이 되어 있다. 범죄 현장에서 체액을 찾아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미용을 위한 피부 선 탠(sun tan)에 사용되며, 파충류를 키울 때 자외선 형광등을 달아주기도 한다. 자외선은 젤 상태의 인공손톱(네일)이나 반도체 공정 중 감광막(photo resist) 등의 경화(UV cure) 용도로 쓰인다. UV glue는 투명 본드처럼 원하는 곳에 바르고 레진같이 자외선(보통 365nm)을 쬐어주면 굳는다. 최근에는 다용도 접착제로도 판매된다. UV 잉크는 인쇄 분야에도 쓰이는데, 유리 벽에 붙이는 투명 실사 출력물은 대부분 UV 인쇄기를 이용해서 만든다. 피부과에서는 건선, 백반증, 아토피 등을 치료할 때 자외선 레이저가 쓰인다. 반도체 분야에서 EPROM(erasable programmable read only memory)이라는 지울 수 있는 ROM의 저장 정보를 지울 때 자외선이 사용된다. 과학용 측정기기로는 자외선-가시광선 분광계(UV-Visual Spectrometer)에서 광원으로 쓰인다. 분자에 자외선이나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쪼이면 분자 내의 전자가 들떴다가 바닥상태로 돌아오면서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빛을 내어놓는다.


우리 주변에는 자외선을 방출하는 기기들이 있다. 벌레 유인등이나 자외선 살균기에 있는 자외선램프(UV lamp)가 대표적이다. 자외선을 우리 생활에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외선 발생장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외선램프를 켜면 보이는 보랏빛 조명을 자외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외선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자외선램프에서는 자외선만 나오는 게 아니며, 그중에 섞여 있는 보라색 가시광선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보통의 자외선램프는 눈에 부신 가시광선을 차단하는 경우가 없는데, 이는 자외선이 방출되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램프를 들여다보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자외선 살균기에서는 살균력이 가장 강한 파장 265nm 부근의 UV-C 자외선을 방출한다. 연속 조사(照射)용으로는 저압수은방전관(피크 254nm) 또는 수은-크세논 방전관을 이용하고 순간 조사용으로는 카메라 플래시에 쓰이는 제논 방전관(피크 230nm)을 이용한다. 보통 UV-Vis 분광기에서 자외선을 얻기 위해 중수소 아크 램프나 제논 아크 램프를 쓴다. 요즘은 270nm 부근의 UV-C를 발생시키는 LED(light emitting diode) 제품도 나오고 있다.


자외선 지수(UV index)는 자외선의 강도를 피부가 타는 정도를 나타내는 국제표준이다. 대략 여름 맑은 날 한낮의 태양광의 강도를 10으로 잡고 비례적으로 표시한다. 저위도 지방이나 바닷가, 고산 지방은 당연히 자외선이 더 강하다. 지수가 2배가 되면 피부가 2배로 더 빨리 탄다. 자외선 지수 2 이하는 가장 낮은 단계로 따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지수 3~5에서는 모자나 선글라스의 사용을 권장한다. 지수 6~7은 1~2시간 햇볕을 쬐면 피부 화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긴소매 옷을 입고 양산을 쓰고 자외선 차단제 바르기를 권장하는 단계이다. 자외선 지수 8~10은 1시간 햇볕을 쫴도 피부 화상이 가능하며, 한낮에 외출 자제를 권장하는 위험 단계이다. 지수 11 이상은 수십 분 정도만 쪼여도 피부 화상을 입으니, 가능한 한 실내활동을 권장하는 매우 위험한 단계이다.


자외선은 주로 피부와 눈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직업적으로 한쪽으로만 자외선을 쪼여 한쪽 얼굴만 늙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생을 같은 집에서 같은 직장으로 버스나 자가용차로 출퇴근한 사람은 얼굴 한쪽에만 기미와 주근깨가 생긴다는 웃으갯소리가 있다. 왼쪽 얼굴에 햇빛을 받으며 출근해서, 햇빛 없는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면 같은 왼쪽 얼굴에 햇빛이 든다는 말이다.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을 비롯해 모든 자외선은 발암물질 1군, 즉 암 유발이 확인된 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자외선은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세포의 DNA 염기 사슬을 끊어 사슬들의 결합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상은 신체의 교정 기제에 의해 복구되지만, 지속적인 자외선 노출이 인체의 복구 한도를 넘어설 정도로 누적되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세포가 발생할 수 있다.


자외선은 염료나 잉크의 화학적 구조를 파괴해서 인쇄물의 색이 바래게 한다. 건물 외벽에 붙은 포스터가 햇빛을 받아 색이 바래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자외선 때문이다. 특히 빨간색이 더 잘 바래는데, 강조한다고 빨간색으로 써놓으면 나중에는 그것만 안 보이고 더 오래되면 파란 잉크만 남게 된다. 형광등에서도 자외선이 방출되므로 실내에서 가재도구의 색이 바랠 수 있다. 자외선은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폴리머들을 약하게 만드는데, 특히 폴리에틸렌이나 아라미드 등이 자외선에 의해 쉽게 상한다.


형광등은 고전압의 전기방전으로 아르곤 원자를 들뜬상태로 만들었다가 바닥상태로 떨어질 때 방출되는 자외선이 유리관 안 벽에 발라 놓은 형광체에 흡수되어 형광 물질의 분자를 들뜨게 한 후 낮은 상태로 전이되어 가시광선을 방출한다. 형광(螢光)이란 말은 반딧불이가 내는 빛이다. 영어로는 형광 물질에 불소 성분이 있어서인지 fluorescence이라고 한다. 사자성어로 형설지공(螢雪之功)이 있다. 여름밤에는 반딧불이 빛에, 겨울밤에는 눈에 비치는 달빛으로 책을 읽어 어려운 중에서 성공한 일화를 표현한다. 반딧불이는 아래 동시에서 읊고 있듯이 개똥벌레라고 불리지만 일급수 근처에 사는 벌레이다.

나를 개똥벌레라 부르지 마!

똥에서 산 적 없어.

일급수가 흐르는 산골

개울가 숲이 내 집이지.

-권영주(1939~ ), 동시 <반딧불이>(2021)


형광과 비슷한 자연현상으로 인광(燐光, phosphorescence)이 있다. 우리 민화에서는 도깨비불이라고 한다. 분자가 대낮에 광자를 흡수하여 바닥상태에서 들뜬상태로 여기 되어 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한밤중에 낮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되면서 가시광선으로 방출되는 현상으로, 묘지 근처나 산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사체의 뼈에 있는 인(P) 성분 때문으로 판단된다.

여름날 한밤중에 개똥벌레가 육지에 있다면, 깜깜한 심해에서 빛을 내고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다. 생물에서 발광하는 물질을 루시페린(luciferin)이라고 하는데 루시페라아제로 산화될 때 생기는 에너지로 들뜬상태로 여기 되었다가 바닥상태로 전이되면서 발광한다. 1 분자의 산화로 1개의 광자가 방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발광 어류에 관심을 보였던 일본 출신의 시모무라 오사무(下村脩, 1928~2018)는 ‘녹색형광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을 발견해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마스크에 있는 회로 그림을 규소(Si) 웨이퍼(wafer)에 옮기는 장비를 노광기라고 한다. 그때 사용하는 광선이 자외선이다. 최소 회로 선폭이 마이크로미터인 시절에는 g선(436nm), i선(365nm) 자외선 노광기(stepper)를 채용했고 니콘이나 캐논 같은 일본 회사의 제품이 강세를 보였다. 이제는 최소 선폭이 나노미터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Deep UV(248nm), Very deep UV(157nm)를 거쳐 이제는 극자외선인 Extreme UV(135nm)를 채용한 네덜란드 필립스사 노광기 제품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장비 한 대 가격이 수천만$(수백억 원)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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