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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하노이 Oct 15. 2023

그쪽도 베글리쉬를 아세요?




Many thanks ạ.
(정말 감사해요)




주재원으로 나오기 전에는

주재원 살이에 대한 막연한 허상(?) 혹은 기대 같은 것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외국어로 뒤덮인 일상에서 영어로 업무를 하며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과 같이

커리어우먼의 포스를 뿜뿜 뽐내며 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서 정말 업무의 90% 이상을 영어로 소통한다.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가까이 베트남에서 영어로 일해 온 지금,

영어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 것 같다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어쩐지 영어실력이, 아니 한국어 실력까지(?)

퇴보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언어학습은

1(영어)+1(제2외국어)=2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출력값에 기존 사용 언어능력이 퇴보하는

0.5(영어)+0.5(제2외국어)=1의 논리가 적용되어서 그런 것일까?



베트남에 지내면서

현지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베트남식 영어'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이름하여 '베글리쉬(베트남어+영어)'다.



혹시 독자님들도 베글리쉬를 아세요?




[그쪽도 베글리쉬를 아세요?]




베글리쉬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가급적이면 된소리로 발음한다.

이를테면 택시를 탈 때,

한인타운에 있는 경남빌딩을,

'경남'이라고 하면 기사님께서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깽남'정도로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된소리로 발음을 해야

제대로 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영어도 비슷하다.

대학원 수업시간 때 브랜드 가치에 대해 배우며

짝퉁을 의미하는 'Fake''빠께'라고 발음하시는 교수님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영어든 한국어든 일단 자음은 된소리로 발음하거나

현지인들이 이렇게 영어를 발음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원활한 소통에 훨씬 도움이 된다.

(아마 우리나라 영어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특이점이 많을 것이다)


다음으로, 존중의 의미를 담을 때 문장 끝에 'ạ(아)'를 더한다.

베트남에서는 존댓말을 할 때 문장 끝에 이 '아'를 붙이는데

매우 많은 경우에 현지직원들은 외국인 보스에게

'아'를 영어와 함께 사용한다.


이를 테면, 결재를 요청할 때, 휴무를 요청할 때 등

글로든 말로든 꼭 이 단어를 붙여 말하는 경향이 있다.


Thank you ạ(땡큐아)

이런 식이다.


아마 베트남에서 오래 근무를 하신 분들은 비슷하게 느끼실 텐데

이제는 이 '아'가 문장 끝에 없으면 조금 허전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끝으로, 받침은 가급적 발음하지 않는다.

콩글리쉬처럼 베글리쉬 또한 받침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다.

이를테면, 샐러드는 베트남어 공식표기로 'sa lát(싸랏)'이다.

또한 베트남어 특성상 받침이 있는 단어가 우리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에

현지인과 대화할 때 이를 유념하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가 말하는 것이 들리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다.

  




Then, tất cả(떳까) 얼마야?
(그럼 전체가 얼마야?)




처음에 베트남에 왔을 때 도처에 울려 퍼지는

위와 같은

'영어+베트남어+한국어' 조합의 문장이 너무나 어색하고

왜 한국인들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각종 언어가 짬뽕된 문장을 만드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반년 정도 지났을 때,


1) 조금 익숙해진 베트남어와

2) 오히려 이렇게 말할 때 현지인과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느낌적인 느낌에


부지불식간 이렇게 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나라에서의 해외근무는

현지인들과 내가 알아듣기 쉬운 방식으로 소통을 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문법에 맞는 문장보다는 단어 위주로  

현지어와 영어, 심지어는 모국어까지 섞어서

짧고 강렬한 소통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베글리쉬에 익숙해질수록

토익성적과는 멀어지는 느낌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는 어떤 나라의 어떤 방식의 영어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글을 읽어주신 구독자님들,




땡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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