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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웅 Nov 09. 2024

육영수 여사도 남편에게 조언했어요

엇박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1925년 태어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의 흉탄에 운명을 다 했다.

역대 대통령의 부인 중 육여사만큼 국민에게 호감적이고 친근한 영부인은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이는 많았지만 육여사를 비난하는 경우는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극빈국이지만 문명과 의식, 저력이 있는 우리 국민을 일깨우고 결집시켜 개발도상국가로 진입시키면서 강력한 리더 쉽을 발휘했다. 그 결과 독재자로 불리면서도 경제, 건설, 국방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였다. 많은 정적을 만들며 그에 따른 정치적 희생자가 있었지만 60~70년대 간신히 하루 세끼 먹는 빈곤의 시대 한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서구식 민주주의 보다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했던 그의 통치 형태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그 당시 국제,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 기준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과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독재의 길을 걷는 박대통령에게 육여사는 청와대의 야당으로 불리였다. 감히 대통령에게 진언하지 못하는 참모들을 대신하여 남편에게 국민의 소리를 전하고, 정치탄압으로 고생하는 야당 정치인을 위로하며 그늘지고 소외된 계층을 돌보았다

소록도에 가서 뭉그러진 손가락에 진물 흐르는 한센병 환자의 손을 덥석 잡고 위로하며 아픔을 같이 했다는 일화는 전설처럼 유명하다. 이 모습을 바라본 한센인들이 통곡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조용하게 알려지는데는 청와대 참모들의 탁월한 홍보 전략도 있었다.(현재 대통령실 참모들에겐 이런 전략이 없다)

지금 영부인으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하다. 음모,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영부인에서 ‘씨’로 격하되어 불리고 정쟁의 핫한 소재가 되어 있다.

국민들의 가슴에 기품 있고 우아하며 인자하게 기억되는 육여사의 내조, 자세, 역할, 무언의 메시지, 따뜻한 영향 등이 영부인의 전형으로 부각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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