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함께 걷는 우리

다시 떠남의 문 앞에서

by 끌로에

처음 해보는 국제이사


업체의 속도와 퀄리티,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까지,

모든 것이 국내 이사와는 달랐다.


이삿짐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집이 텅 비어갈수록,

마음은 묘하게 가벼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웠다.

텅 빈 거실은 마치 우리가 살았던 시간을

조심스레 접어 서랍 깊숙이 넣어두는 느낌이었다.


남겨진 시간, 그리고 마음


남편이 한 달 먼저 중국으로 떠난 뒤,

나는 아이들과 한국에 남아 해외이사를 준비했다.

처음엔 막막했고, 가끔은 억울하기도 했지만,

이 과정이 내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의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하고,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 친구들에게 줄 마지막 카드를 쓰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떠남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잠시 마음이 스쳤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이야기의 첫 장을 함께 넘기는 용기도 배우는 중인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떠남과 남음의 무게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남은 짧고 아쉬웠다.

같이 울까 봐, 평소처럼 웃으려 애썼다.

힘들 때 언제든 전화하라는 친구의 말,

소중한 선물과 카드들.

그 모든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짐을 완전히 비운 집은

우리 가족 흘린 시간의 잔향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텅 빈 거실 한가운데 서서 아이들과 남편을 떠올리니,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함께 건너가는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공항에서는 양가 부모님이 한참을 손을 흔들어주셨다. 아이들은 쉽게 등을 돌려 출국장으로 향했지만, 나는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그 모습을 눈에 꼭 담았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은 사람에게도

이 순간은 같은 무게로 내려앉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길


비행기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점처럼 멀어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을 떠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만나러 가는 걸지도 몰라.


중국에 도착하자,

낯선 공기 속에서 이상하게도 익숙함이 먼저 스쳤다.

20대 젊은 시절 어학연수를 하며 느꼈던 공기, 그때의 온도와 비슷한 어떤 감각이 있었다.

마치 오래 접어두었던 페이지가 조용히 다시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들과 새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문득 깨달았다.

'이건 남편의 발령으로 시작된 삶이지만,

여기서의 시간은 결국 내가 채워갈 공간이겠구나.'


그리고 어쩌면,

이곳은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를 건네는지도 모른다.

중국과 인연이 있던 나에게

삶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익숙해질 수 있는 날들


낯선 도시의 길 위에서

내 이름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 길 한가운데, 아이들과 한 달 먼저 와 기다려준 남편이 함께 있다.


나를 잃지 않고,

함께 걷는 우리도 잃지 않는 삶.

낯선 바람은 아직 서툴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라면

나는 다시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