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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영 Jan 21. 2023

시간이 너무 빠르다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시작된 지도 벌써 3주가 되었다.


참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언젠가부터 연초가 되면 이 말들을 반복하게 된다. 내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에 기함하고, 지나간 기억의 까마득함에 씁쓸해하고, 후배들과 점점 벌어져가는 연식에 헛웃음을 지으며.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시간의 속도에 대한 경탄의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팀의 50대 선배가 말했다. 10대의 시간은 시속 10km, 20대는 20km, 30대는 30km로 달린다고. 그러니 50km로 질주 중인 자신을 보며 위안 삼으면 된다고. 아재 감성이 그득한 유머를 던지고 선배는 만족스러운지 낄낄거렸지만, 나는 왠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 이야기가 꽤나 진지하게 다가와서였다. 지금도 넘치도록 충분히 빠른데, 앞으로는 더욱 빨라진다는 것 아닌가.


푸념해 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아무 생각 없이 녹색창에 활자를 입력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그런데 이런.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니. 나만 몰랐었나. 선배의 우스갯소리에는, 놀랍게도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몸에는 ‘생체시계’가 있고 나이를 먹으면 그것이 조금씩 느려지는데, 그럴수록 외부의 시간은 오히려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생체시계의 배터리는 ‘도파민’이란 신경전달물질인데, 나이를 먹으면 이것의 분비도 감소한다는 것. 한마디로 내가 느려지고 연료도 떨어지니, 나를 제외한 나머지의 상대적 시간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앞으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더욱 빠르게 늙을 거라니. 마음은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별도리가 없으니 받아들여야지. 불행 중 다행인 건, 과학적인 이야기니만큼 미봉책 정도는 있다는 것. 달리는 시간의 꽁무니를 부여잡고 예전처럼 함께 걷자고 부탁하는, 그런 류의 방법 말이다.


물론 대단한 건 아니다. 짐작했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켜 우리의 생체시계가 다시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도파민은 성취감, 의욕, 쾌감, 기쁨이나 감동 등을 느낄 때 분비되기에, 바꾸어 말하면 새롭고 색다르며 자극적인 상황들이 있어야만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쉽지,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자극과 마주하는 건 가뭄에 콩 나듯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움과는 점점 더 거리감만 생기고. 그럼 그냥 포기해야 하는 건가.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외부를 바꿀 수 없다면 내부를 개선하면 되는 일이다.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삶의 사소함에서도 신선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 않던 운동을 30분이라도 한다던가, 다니지 않던 길을 걸어본다던가 하는 작은 시도에서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 항상 보고 듣던 익숙한 것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색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매번 거창하고 특별한 경험이나 대단히 자극적인 도전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깝고 수월하지 않을까. 어쩌면 도파민 관리에 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시간여행’이라면 뭔가 거창한 모험을 상상하게 되지만, 주인공은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지속되길, 가족의 안온함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랄 뿐이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간여행자였던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매일을 두 번씩 산다. 첫 번째는 평소대로, 두 번째는 긴장과 걱정 없이 일상의 귀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보다 소중하게, 온전히 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시간여행자가 아니기에 주인공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하고, 순간에 집중하면서, 마치 주인공의 깨달음 이후의 삶처럼 살아간다면, 시간의 체감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주인이 이렇게까지 노력한다면, 도파민이란 녀석도 절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훨씬 더 쉬운 방법도 있다. 담배, 각성제, 그리고 마약이다. 마약은 물론이고, 당연히 나머지도 추천하지 않는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 몸뚱이 고장내기 딱 좋은 것들이다.


한때 실리콘밸리에서는 ‘도파민 단식’이 이슈였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는 자극적인 것이 너무 많아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기에, 의도적으로 자극을 피해 삶의 단순함 속에서도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일종의 트렌드이다. 뭐든지 과유불급. 결국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적당한 자극을 받으며,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삶을 지켜내는 데에도, 속절없는 시간을 잠시나마 붙잡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도저도 모르겠고, 생체시계고 도파민이고 나발이고 만사 귀찮은 사람에게도 방법은 있다. 올해 6월부터 전 국민의 나이가 만 나이로 통일되어, 최소 1살에서 2살씩은 어려지니 그것에서라도 위안을 삼으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숫자놀음에 불과한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회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언제나 모든 것은, 심지어 시간의 속도조차도,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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