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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n유미 Oct 30. 2024

초보직장인과 배테랑 택시기사의 배틀

Chap. 2   음/주(잘 먹고 즐겁게 마시는 이야기)

『 안주잡설 』 정진영 작가의 책은 절주 하는 내 인내심에 소주를 들이켜는 결과를 낳았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족발’ 편이었는데. 소설 초고를 마치면 족발과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얘기다. 누구나 ‘특별한 기억을 부르는 안주’ 하나쯤은 있지 않나 하는 부분에서 나의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소주와는 배를 든든하게 해주는 감자탕.

청하는 빼먹는 재미 꼬치구이.

막걸리에는 빗방울 소리와 같다는 지짐이.

레드와인과는 순대(찐 것은 금방 마르니깐 기름을 살짝 둘러 구워주면 좋다).

화이트와인에는 담백한 감칠맛 치즈홍합구이.

이과두주는 알코올 밀어내는 기름진 중화요리.

뭐가 빠졌나 했더니 맥주네. 얘 짝꿍은 청양마요를 곁들인 배부르지 않은 깡과자들.

술과 안주 페어링 대회가 있으면 우승할 자신이 있다.(업무 할 때나 글 쓸 때 이 열정의 반만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드디어 추억의 페어링이 생각났다. 아빠와의 '소주와 닭계장'이다.

2000년 초중반에는 돈 만원 이내로 이것이 가능했다. 저렴한 안주라면 소주 두 병까지도 꽉 차게 가능했을 거다. 20대 사회초년생이 열정페이를 불사른 후 동료들과 타 부서 욕을 안주 삼아 1차를 마신 날. 개인택시를 운행하던 아빠를 불러 2차 가자고 객기를 부렸단다.

아빠는 밥때를 놓쳐 늦은 저녁을 먹어야 되는 시간. 동네에 찌게, 삼겹살 등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는 기사식당에 갔다. 아빠는 “닭계장”을 밥 안주 삼아 소주 한 병과 같이 드셨다. 나는 반찬을 집어 먹었던 것 같다.

마시며 먹으며 우리 둘은 사회생활의 힘든 점 수다 배틀을 했다. 결과는 나의 패배. 나의 회사 생활의 어려움보다 아빠의 택시 손님 갑질이 훨씬 큰 스트레스라는 결론을 얻은 날이다.


열거할 수 있는 좋아하는 안주는 많지만, 특별한 기억의 안주는 그날 내 입에 들어가지 않았던 “닭계장”이다. 술 생각보다 아빠 생각이 크게 자리 잡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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