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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영 Nov 05. 2022

너와 나의 거리 빵 미터 - 1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뭉글뭉글, 하늘에 회색빛 순두부 같은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다. 닷새 동안 내리 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바람만 간간이 불었다. 혹시나 해서 뉴스를 보면 ‘한때 흐리다 맑아지겠습니다!’ 하고 웃는 누나 얼굴만 보였다. 벌러덩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철썩철썩 쏴르르르, 파도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 광고 소리였다.      

 “당신과 나의 마음, 몇 미터일까요?”     

  무슨 광고인가 싶어 고개를 슬쩍 돌렸다. 어떤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다 핸드폰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끝.

  “마음, 미터…….”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엄마 생각도 나고 아빠 생각도 나고 누나 생각도 나고 현구 생각도 나고, 그러다 한숨도 났다. 심심했다.

  “잔칫꾸욱! 노올자아!”

  마당에서 현구 목소리가 났다.

  ‘빵! 어데 장치국 님의 이름을 함부로!’

  나는 벌떡 일어나 문을 뻥 걷어찼다. 사실은 시늉만 했다. 현구가 배시시 웃으며 오른 다리로 왼 다리를 쓱쓱 비벼 댔다. 비쩍 마른 다리가 오늘따라 더 말라 보였다.

  “뭐꼬?”

  “놀러 가자고.”

  “아니. 몸을 왜 배배 꼬고 난리냐고.”

  “내가?”

  현구가 제 몸을 보더니 얼른 다리를 딱 세웠다. 현구는 뭔가 달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 꼭 그렇게 한다. 빵을 하도 좋아해서 별명이 ‘빵’인데 지금은 마음껏 못 먹는다. 

  마당으로 나선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초콜릿을 현구 코앞에 들어 보였다.

  “니, 이거 냄새 맡고 왔제? 우리 누나 배 타고 나가는 것도 다 봤고, 맞제?”

  “헤헤헤.”

  도시에 사는 누나는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섬으로 들어온다.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꼭 하루씩 짬을 내어 맛있는 것도 사 오고 내 공부도 봐준다. 우리가 사는 섬은 아주 작아서 초등학교까지밖에 없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면 육지로 유학이란 걸 간다. 우리 누나도 일찌감치 유학을 갔다.

  “잔칫꾹, 니는 진짜 좋겠다. 우리 형아는 한 번 나가가꼬는 죽어도 안 오던데 너거 누나는 억수로 잘 온다 아이가. 그카고 도시에 있는 마트에서 사 온 초콜릿은 신기하게 더 맛있더라!”

  현구가 후다닥 내 앞으로 서더니 양손을 가지런하게 모았다. 나는 초콜릿 봉지를 뜯어 은박지를 벗겨내고 초콜릿 한 칸을 딱 소리가 나게 떼었다.

  “아끼 먹을라꼬.”

  “하모하모, 그캐야지.”

  현구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입을 우왕 벌렸다. 나는 현구 혓바닥 가까이 초콜릿을 놓으려다 말고 날름 내가 먹어 버렸다.

  “흐흐, 공짜가 어딨노!”

  내가 달리기 시작하자 현구는 울상이 되어 “야아아앙!” 하고 콧소리를 내며 내 뒤를 쫓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사이를 지나 마을회관을 지나 학교 담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현구가 따라잡지 못할 거 같으면 속도를 늦췄다가 가까이 오면 다시 내달리기를 반복했다. 며칠째 비가 온 탓에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물방울이 튀어 올라 종아리를 간지럽혔다. 할머니가 보면 구정물 묻히고 다닌다고 한소리하겠지만 그럼 뭐 어떠냐 싶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뒤쫓아 오는 현구를 놀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이 좁아졌다. 조금만 더 오르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나는 그 바위에 앉아 바다 보는 걸 좋아한다.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바다가 한없이 미웠다가도 그 깊이가 얼마쯤일까를 상상하면 아득해진다. 그 느낌이 참 좋다. 그 깊은 곳 한쪽에선 뭔가 신비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럼 바다를 싫어했던 엄마가 육지로 나가 돌아오지 않은 일도, 아빠가 엄마를 찾아 떠났다가 더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 버린 일도 그럭저럭 괜찮아진다. 

  “야, 잔칫꾹! 진짜 이럴끼가?”

  현구가 소리를 빽 질렀다. 뒤돌아보니 현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무 달렸나 싶었다.

  “빵, 힘드나?”

  현구에게 다가서려고 한 걸음 내딛는데, 아뿔싸! 몸이 기우뚱했다. 뒤꿈치가 죽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고는 현구 발 앞으로 미끄럼을 탔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 현구가 배를 잡고 낄낄 웃었다. 

  ‘니도 당해 봐라!’

  나는 현구 바지를 잡아당겨 내렸다. 

  “으으아악!”

  현구가 내 쪽으로 엎어지며 나도 다시 바닥으로 푹 처박혔다. 하필 내가 있는 쪽으로 현구를 끌어당기다니, 진흙밭에 미끄러졌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오호!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잔칫꾹, 니는 이제 끝났다. 헤헷!”

  현구가 온몸에 힘을 주며 내 몸을 깔아뭉갰다. 그때, 등 뒤로 뭔가 딱딱한 것이 푹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야! 빵, 좀 비키 봐라. 바닥에 뭐 있다 아이가.”

  “응? 뭔데?”

  현구가 몸을 발딱 일으켜 세웠다. 나는 몸을 돌려 내 등이 닿았던 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뭔가 둥그런 것이 솟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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