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교도소 수감자이자 간암 환자였다.
교도소에서 약을 받아먹으며 치료했지만 얼마 전부터 얼굴이 샛노래지고, 배가 불러 와 병원 진료가 필요해 교정 공무원과 함께 입원하게 되었다. “수감자라 1인실 병실이 필요해요.” 원무과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떤 죄로 수감되었는지는 몰라도 ‘수감자’라는 단어만으로도 왠지 꺼려졌다. 그런데 막상 올라온 환자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투박하고 덩치가 크고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한 없이 연약했다. 혼자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웠고, 배는 내일 출산하는 임산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러있었다. 그중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건 침상 난간에 연결되어 있던 그의 은색 수갑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환자는 그 은색 수갑을 차야 했다. 침상을 옮길 때나 잠깐 수갑을 풀 수 있었다. 그것도 3명의 교도관과 간이 CCTV 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며칠 뒤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다. 응급 투석이 필요했지만, 그마저도 그의 컨디션 저하로 투석을 끝까지 완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 그에게 수액을 바꿔 달고 있는데 환자는 내게 한 글자, 한 글자 힘들게 물었다.
“혹시 보호자와 면회가 가능할까요?”
보통 수감자들은 암의 병기가 높거나 중증 이상의 치료를 해야 할 때 법무부에서 형의 집행 정지가 떨어지는데, 수감자는 그걸 받아야 교도관들이 떠나고 보호자와의 면회가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보다 죽음이 더 먼저 찾아 올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사람을 죽였을 수도, 단순 폭행이었을 수도 혹은 억울하게 형을 살 게 된 걸 수도 있다. 다만 그저 환자라고 생각하니 똑같이 마음이 아팠다. 죽음을 앞둔 이 순간 가족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루하루 상태가 안 좋아진 환자는 이젠 대화는커녕 눈을 뜨는 것조차 어려웠다. 병실 밖에 있던 환자의 배우자는 제발 들어가게 해달라며 애원했지만, 나는 안 된다고 말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틀 뒤 담당 교수가 내민 서류는 심폐소생술 금지 동의서.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음에 동의해야 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담당 교수가 차갑게 내민 서류에 보호자는 결국 동의했고, 그날 환자는 죽었다. 환자의 심장이 멎고 사망선고까지 끝나고 나서야 보호자는 들어올 수 있었다. 보호자는 아직 채워진 환자의 수갑을 보고는 풀어달라며 울부짖었다.
그제야 교도관은 수갑을 풀려 해봤지만, 왜인지 열쇠를 아무리 돌려봐도 수갑은 더 쪼여만 갔고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