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첫 식사를 하기까지의 공복시간. 보통은 대여섯 시간을 버텨내야 하지만 오늘은 좀 길다. 불금을 맞이해 만든 치팅데이로 오늘 밤은 삼겹살 파티를 열 계획이기 때문이다. 삼겹살엔 뭐다? 그렇죠, 상추. 또 뭐다? 네, 쌈장에 생마늘. 그리고 또? 에이, 그거 있잖아요. 무색투명한 그거.
간헐적 단식합니다! 다이어트합니다!라고 며칠 전에 외쳐놓고서 뭐 벌써부터 치팅데이냐 하면 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도 중간중간 사는 맛도 있어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양심은 있어서 16:8은 지켜서 먹으려고 오늘 식사의 첫 삽은 14시부터 뜨기로 했는데, 이미 마음은 삼겹살과 소주 생각에 쉴 새 없이 요동친다. 사이드 메뉴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감을 얻으려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다. '食事(식사)', '食べ物(음식)', '料理(요리)' 등으로 검색해 그간 몇 년 간 먹었던 것들을 가볍게 눈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외지에서도 진짜 잘 먹고 살았구나, 나.
사진이 4만 장 있는데 그중 9352장이 음식이다. 이 핸드폰을 쓴 6년 동안, 사진을 찍고 싶다는 기억에 남는 순간의 1/4이 음식이라니.
나머지 3/4는 뭘까 싶어 내 삶에 걸쳐져 있는 생각나는 키워드 몇 개로 검색해 보았는데, 동물에서 고양잇과 동물이 2492장이나 나왔다. 고양이도 안 기르는데 왜? 하고 열어보니 거진 본가에 사는 스피츠들 사진이다. 아이폰에게는 스피츠가 고양이처럼 보이나 보다. 이렇게 앉아있어서 인가.
아무튼 오늘은 치팅데이다.
맨 정신으로는 버틸 자신이 없어서 아침에 다시 눈을 붙여 시간을 벌었다.
더워서 1시간 만에 일어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꿈을 다 꾸었다. 예쁜 아가씨가 나와서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할머니 이후 새장가들어 얻은 부인, 그러니까 우리 새 할머니라며 한국에 간 나와 남편에게 저녁밥을 차려주려고 하는 해괴망측한 꿈이었다. 꿈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어, 그런데 할머니 (일단 할머니라 부름) 몇 살이세요라고 물으니 안 그래 보이겠지만 2010년 생이라고 했다. 에라이, 할아버지 이 양반을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며 꿈에서 깼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10년쯤 전에 돌아가셨으니 이미 그냥 두어지지 않으셨....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아무튼 오늘은 치팅데이다.
이상한 꿈을 꾸었지만, 아침부터 편의점 술 쿠폰 3장에 연달아 당첨되었지만, 쓰레기통 옆에서 참깨 같은 날파리 알을 발견해 충격을 받았지만, 시에서 세금을 깎아주고 남은 만 엔을 현금으로 주겠다는 급부금 통지서를 받아 신나지만, 내 지난 6년간의 1/4이 음식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헛헛하지만, 벌써부터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나는 치팅데이다.
삼겹살에 소주 말고는 뭘 또 먹을까.
맨 정신으로 버틸 자신이 없어 잠으로 시간을 보낸 것 치고는 이상하게 배가 덜 고프다. 명확한 보상은 고난 앞의 사람을 보다 강하고 긍정적이게 한다.
앞으로 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