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의 치팅데이는 끝도 없이 이어지다 일요일 밤 8시에야 겨우 종료되었다. 폭풍같이 몰아치던 다섯 끼를 먹으며 (그래도 16:8은 철통같이 지켰다) 나에게는 간헐적 단식과 간헐적 폭식은 겨우 종이 앞뒷면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포커스를 16에 두느냐, 8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뿐.
그런 2.5일을 보낸 뒤, 어제는 혹사시켰던 위장의 역습에 하루종일 화장실에서 살아야 했다. 겨우 잠잠해졌다 싶었더니 이번엔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밖에 돌아다니던 주말 오전의 공복이 큰 무리 없이 스쳐 지나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무래도 공복의 존재감은 공복보다 더 몰두할 것이 있으면 금방 잊히는 것 같다. 사고와 행동 그 한 끗 차이로 공복의 괴로움은 진해지고 옅어진다.
한 끗 차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주말의 간헐적 폭식 중엔 전자레인지로 푸딩 만들기에도 도전했었다. 내열 머그컵에 설탕과 물을 넣고 돌려 캐러멜 시럽을 만들고, 계란과 설탕, 우유를 섞어 체에 거른 후, 머그컵에 붓고 중탕으로 돌리면 완성되는 레시피였다. 물을 너무 넣었는지 캐러멜 시럽 대신 용암같이 뜨거운 설탕시럽이 만들어졌지만 이전에 전자레인지로 라면땅 만들기 하다 자기 그릇이 폭파된 경험이 떠올라, 무리한 시럽 만들기는 포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나온 것은 -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훌륭한 계란찜이었다. 단식 개시 20분 전에 분연히 일어나 만든 것이 이것이라니. 간헐적 폭식 다이어터, 아니, 간헐적 단식 다이어터로서 오점만 남았다. 그래도 퍼포먼스는 해야겠기에 테이블에 넓은 접시를 놓고 컵을 뒤집었다.
밑바닥은 제법 푸딩 같은 모습이었다. 문제는 비율이다. 전체 높이 5센티에 한 5미리 정도는 푸딩, 4.5센티는 계란찜. 나는 푸딩이라 부를 수 있는 윗부분만 조금 걷어 남편의 포크 위에 얹어 주었다.
"이거만 먹으면 푸딩."
반대로 말하면 그걸 못 먹으면 달콤한 계란찜. 그래도 체에 걸러서 입자는 아주 고운 계란찜이었다.
실패의 원인은 100% 우유다. 원래 계란이 한 개 들어가는 1인분 레시피라 양을 불리려고 계란을 두 개 넣었는데 우유까지 두 배 넣기엔 너무 작은 그릇을 썼다. 큰 그릇에 옮겨 담고 계속하면 됐을 것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유를 덜 넣으면 덜 부드러운 단단한 푸딩이 될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우유를 덜 넣은 채 만든 것이 세상 달달한 계란찜을 만들어 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마도 이 '덜 부드러운 단단한 푸딩'을 우리는 계란찜이라 부르기로 했을 것인데.
푸딩과 계란찜이 한 끗 차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왜 미리 상상하지 못했을까.
한 끗 차이에 관한 경험은 또 있다.
지난주, 쓰레기통 주위에서 날파리 알을 발견한 뒤, 쓰레기통에 스티커 타입의 살충제를 붙이고 베란다에도 걸이형 벌레퇴치제를 매달았다. 이런 게 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근처 풀숲에서 매일 공급되고 있을 신선한 날벌레들을 쫓아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신뢰할 수 없어 이제까지는 써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줄곧 의심스러웠다. 매다는 그 순간까지도.
그런데 효과가 있긴 있는지, 아침에도 한두 마리 방충망에 붙어있어야 할 녀석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역시 이게 있고 없고 한 끗 차이로 삶의 질이 확 달라지...,라고 쓰고 있던 지금 이 순간,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날개미 한 마리가 방충망을 기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실망감에 쓰던 문장을 지우려 했는데, 날개미가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아, 대자연을 상대로 한 손바닥만 한 벌레퇴치제의 효과도 한 끗 차이, 아주 미미한 것이로구나.
그래도 그런 한 끗 차이로 울고 웃고 기뻐하고 안타까워하며, 나는 그렇게 다사다난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오늘의 아침은 11시 반부터 먹을 수 있다.
한동안 아침은 항상 빵이었는데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며 여러 조합을 시도해 보고 있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오버나이트 오트밀. 우유와 꿀만 넣어도 맛있고 간편하지만, 껍질을 벗긴 바나나를 잘라 넣거나, 냉동실에서 블루베리를 꺼내 넣어보고 싶기도 하다. 설령 그것이 겨우 한 끗 차이라 할지라도, 그 한 끗 차이로 인해 더 기분 좋고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약간의 수고쯤이야 들여봄 직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다간 <주 4 간헐적 단식, 주 3 간헐적 폭식>이 될 것 같다는 위태로움을 안고 있지만, 나의 간헐적 단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