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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ug 28. 2024

쌀이 없으면 오트밀을 먹으면 되잖아요

마트 다섯 군데를 돌았는데 쌀이 없다. 매대를 텅 비워놓기 좀 그랬는지 라면, 국수, 파스타를 자리에 채워놓은 곳도 있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의 면식버전인가. 쌀이 없으면 면을 먹으면 되잖아요. 


지금 일본은 쌀부족 상태다. 작년 벼농사가 흉작이었던 것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쌀 소비량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상반기 관광소비액 3.9조 엔 생길 땐 어쩌고 이제 와서 외국인 핑계를 시골에선 현지에서 생산되는 쌀들이 알음알음 유통되고 수요도 도시보다 크지 않아 수급이 안정적이라던데, 우리 동네도 시골인데 왜 이러지. 파만 심지 말고 쌀도 좀 심지. 


파는 남아돌아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에도 얹어먹는다


쌀이 없다 없다 해도 얼마 전까지는 쌀 포대를 볼 수 있었다. 일본에도 비축미제도가 있다더니 그걸 풀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면면이 어째 좀 수상하다. 후쿠시마 쌀, 후쿠시마 쌀이 섞인 쌀, 베트남에서 기른 자포니카 쌀. 혼란스럽다. 그래도 간혹 가다 그 외의 쌀들과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서 좀 찾아다니기는 해야 하지만 원하는 쌀을 (비싸더라도) 살 수는 있는 시스템일 거라 간과했다. 지금은 베트남 자포니카조차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우리 집에 남은 쌀은 2홉 정도. 이미 지난주부터 쌀은 남편의 도시락 용으로만 쓰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것인지, '안 먹는 것'이 '못 먹는 것'이 되면 갑자기 그립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새하얀 쌀밥 위에 구운 생선살을 척 얹어 한입 크게 떠먹는 상상에 군침이 덕지덕지 묻어 나온다. 없는 쌀을 만들어 낼 수는 없고 대안책을 찾아야 하는데... 즉석밥은 타산에 맞지 않고, 쌀과 비슷한 곡물, 곡물, 곡물... 아, 그래. 오트밀이 있었지. 


이제까지 오트밀은 우유에 하룻밤 재워두었다 먹는 오버나이트 오트밀이나 전자레인지에 물과 치킨스톡을 넣고 돌려 포리지로 먹었는데 레시피를 찾아보니 볶음밥을 만든 선구자가 계셨다. 약간 응용해 있는 재료로 만들어봤다. 참기름에 양파, 파, 생강장, 마늘 후레이크를 넣고 볶다가 계란과 오트밀(*미리 약간의 물과 함께 전자레인지에 1분 반 돌림)을 넣고 뒤섞어 볶아 간을 하는 심플한 것이었다. 간은 미원과 소금으로 했다.


퀵 오트밀을 써서 죽에 가까운 식감과 비주얼이지만 맛은 제법 볶음밥스러웠다. 대신 마늘 후레이크를 위에 뿌렸더니 씹는 맛이 향상됐다. 다진 양배추나 당근도 식감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엔 롤드 오트밀로 해볼까. 

그제 산 마라유를 뿌려 먹으면 중화요리 느낌도 물씬. 오랜만에 씹어보는 밥 비슷한 것에 짠한 향수를 느낀다. 인류가 줄곧 주식으로 삼아왔던 쌀과 비교하면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도 없잖아 있지만, 햅쌀이 시중에 돌기 시작할 때까지는 어떻게 버텨볼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앞으로 딱 한 달, 한 달만 버티면 햅쌀이 온다.


그런데 이렇게 '쌀 대신 오트밀을 먹으면 된다니 완전 럭키비키잖아' 같은 글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 논 보러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더운 여름 때문에 생겼다는 흉작이 작년 딱 한해의 일로 끝날 수 있을까. 기후이상이 온 근미래엔 식량을 가진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던데, 천하는 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걸 배부르게 먹을 수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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