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내 나이 때 엄마는 칭얼거리는 갓난아기를 둘러업고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긴긴밤을 견뎌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7평짜리 자취방에서 뒹굴거리며 과자나 주워 먹고 있다.
나는 가끔, 아니 자주 내가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낳고 한 생명을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이 아이를 키워내야 할지 막연한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지만, 그와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도 맛보았다고 했다.
어느 날 생선을 손질하는 엄마를 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생선이 냄새나고 징그럽지 않냐고. 아니라고 할 줄 알았던 엄마가 응 엄마도 징그럽고 싫어라고 했을 때 조금 놀랐다. 엄마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네들 먹이려고 하는 거지, 너희들이 좋아하니까.
나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싱크대에 홀로 서서 익숙한 듯 생선 비늘을 박박 문지르던 엄마, 평소보다 더 작아 보이는 뒷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 순간을.
문득 내가 엄마가 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도 아이를 위해 기꺼이 할 수 있을까. 스르륵 몸에 힘이 풀렸다.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내 엄마를 찾고, 엄마의 등을 껴안고 살 냄새를 맡으며 안정을 얻고, 요리를 할 때마다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다가 결국엔 엄마의 손길이 담긴 반찬을 얻어오는 그런 철부지이지 않을까. 나에게 김치를 담그고 생선을 손질하고 요리를 한다는 건 조금 웃기지만 어쩐지 어른의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 나는 엄마 같은 엄마는 못 될 것 같아 하니 엄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되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엄마도 젊었을 땐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그 말에 나는 젊은 날의 엄마, 그러니까 내 나이대였을 엄마를 떠올렸다.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엄마의 얼굴들을.
조그만 손으로 밥을 안치고 아빠의 술 심부름을 갔다가 저녁이 되면 어딘가로 피해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엄마와, 아직 어린 나를 옆에 두고 내 동생을 밴 몸으로 집안일을 해야 했던 시절까지.
엄마의 모든 게 대단해 보였던 어린 시절을 지나, 엄마에게도 처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나는 엄마가 느꼈을 젊은 날의 치기와 불안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나날에 느꼈던 막막함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조금 기쁘고도 슬펐다.
처음엔 나이 드는 게 그저 외적인 변화 때문에 싫었는데, 이제는 내가 이해하게 된 복잡한 슬픔이 하나 더 는 것 같아서 싫다. 쪼그라든 엄마의 뒷모습도, 잠이 없어져 일찍 일어나게 된 엄마의 달라진 모습도.
그래서 어쩌면 내가 이만큼 컸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우리 집 앞엔 초등학교 운동장이 있다. 어렸을 땐 운동장이 너무 크게 느껴져 운동장을 가로질러 후문까지 가는 게 너무 큰 일처럼 느껴졌다.
체육대회 땐 운동장 한 바퀴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전교생이라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 작은 시골 초등학교였는데도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시선에 얼마나 떨렸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스무 살이 되고 서울에 올라와 한참이 지나 그곳을 우연히 지났을 때, 나는 그 운동장이 얼마나 작은지 알고 조금 허탈했다. 내가 큰 건지, 운동장이 작아진 건지. 커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나이를 먹은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숟가락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일, 말을 하고 글자를 쓰는 일, 혼자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 오는 일, 떡볶이를 파는 아줌마에게 어묵을 더 달라고 달라고 말하는 일, 높은 곳에서 점프하는 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 어렵지 않은 게 없었고, 도전이 아닌 게 없었구나. 이 모든 게 기적이었구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 꾹 참고 이 모든 걸 잘하게 된 나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해 줘도 되겠다.
내가 생각한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못할지라도. 지금 나에게 어려운 일들이 그때는 쉬워질지도 모르니.
그렇게 커 보이던 운동장이 너무 작게 느껴지던 스무 살의 어느 날처럼, 10년 뒤쯤 다시 이 글을 보면 그때는 또 이런 복잡한 슬픔들에 어쩌면 덤덤해져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