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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Nov 27. 2022

‘찐’ 예술가(주정뱅이+괴짜)의 귀환

한국의 조지 밀러는 지금껏 무슨 영화를 찍었나

나와 영화감독 형이 좋아하는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


이게 영화감독이야? 동네 백수건달한량이야?


이 양반 이야기를 할 때면 괜한 웃음 터져나온다. 그러면서도 화가 난다. 이 형이 나한테 벌인 추태와 진상 탓이다. 이 양반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와 헤어진 그 친구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한국의 조지 밀러. ‘천재’에 대한 에피소드다.


2018년? 어떤 블로그였나, 어느 사이트에서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이상한 흑백 단편을 봤다. 당시 나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영화적 지식과 소양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쓰레기’인 것은 단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댓글들을 보니 역시 혹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짧은 비난과 조소 밖에 관찰할 수 없었고, 왜 이 영화가 쓰레기인지 합리적 근거와 예시를 든 분석은 나와있지 않았다.


나는 왠지 모를 오지랖으로 그 악역을 자처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사실 그렇게 긴 글도 아니었다. 한 6~7줄? 내 분석을 본 단편 영화 감독의 글이 달렸다. 대뜸 자기 전화번호를 적더니 “너 깡있으면 연락해라. 쫄지말고. 이야기 더 듣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깡패인가 싶었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 이 괴상한 협박 초대장에 수락했다. 고향이 대구이면서, 2살 때부터 인천 부평에 살아온 나도 약속 장소에 ‘신림동’을 보자 솔직히 긴장됐다.


신림동 옥탑방에 자취하는 두 명의 서울대생


다행히 한국 사람이었고, 만날 당시 백수한량에 들어맞는 차림새로 남루한 행색이었으나, 진짜 깡패는 아니었다. 소위 엘리트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동네 아저씨였다. 심지어 약속 장소조차 본인 집이 아니었다. 내가 신나게 깠던 단편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과 친구인 또다른 서울대생의 옥탑방이었다.


옥상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지루한 영화를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줄거리는 자신의 죽음을 뒤늦게 깨닫는 주인공이 자기 고향의 무덤으로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영화 이야기를  것도 없었다. 그냥 순간의 감상과 촬영  편집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물론 흥미로운 지점도 있었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여도  영화의 감독과 배우의 설명을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자기가  영화를 찍게 되면 조언을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이며 늦은 밤까지 별빛 아래 술판을 벌이다 헤어졌다.


그 친구와 첫 강원도 여행, 이 양반 때문에 박살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 감독과 나는 일산에서 다시 만났다. 누군지 모를 이(사실은 감독의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거지처럼 공짜 밥을 먹게 됐고, 이 양반은 지 가방에 주섬주섬 소주병을 2-3병 챙겼다. 원래 약속은 서울의 한 예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뜬금없이 일산 어딘가로 나를 불러냈다. 이 곳이 결혼식장인 것도 횡단보도 너머 시야에 들어오자 알게 됐다.


나도 참 속도 없게 그곳을 찾아간 뒤, 우리는 다시 서울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 시작까지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라운지에서 앉아 기다리는데 이 미친놈이 가방을 열고 결혼식장에서 담은 소주병을 입에 가져다 스트레이트로 때려 마셨다. 나는 너무 놀라 말도 못하고 몸짓으로만 이 백수한량을 제압했다. 이미 결혼식장에서 2병 깐 양반이라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나 : (작은 소리로)뭐야 형 미쳤어? 왜 여기서 대놓고 술을 마셔? 일단 나가자


[라운지 밖 근처 어느 골목]


나 : (큰 소리로)아니 형 미친놈이야? 정신나갔어? 취했어? 왜 이레?


주정뱅이 한량 : 내가 지방 촌놈 출신이라 서울 영화관에서 이런 낭만을 꿈꿨어. 아니… 왜 그저 뭐냐… 술을 못마시게 하는거야… 우리 동네에선 다 이래 하는데. 서울에선 이런 낭만이 없어?


(- 욕이 절로 나온다.)


나는 이 양반과 영화 상영 중 금주라는 합의에 극적으로 타결했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관에 입장해 영화를 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영화가 끝나고 이 미친놈이 영화관이 떠나가라 박수를 쳤고, 나는 또 소주병을 꺼내나 가방 지퍼를 예의주시 했다.


내 생에서 가장 힘겹게 본 영화는 <라탈랑트>였다. 미치광이의 박수에 걸맞게, 정말 말도 안되는 미친 걸작이었다. 그 때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탈랑트> 감성에 너무 충만히 젖어 이 양반과 3차까지 술을 달렸다. 사실 오롯이 이 양반 탓은 아니다. 술로 인한 비극은 우리 사귀던 동안 내 발목을 잡았다.


바로 다음 날 내 차로 운전해 그 친구와 새벽에 일찍 강원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내가 오전 10시 반까지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여자였으면 당연히 즉시 헤어졌거나, 그 날 여행은 못 갔을테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픽업하러 도착할 때 까진 무섭게 쏘아붙이더니 막상 목적지로 출발하니까 별 말 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망친 여행을 더 망치기 싫었다나… 부끄러운 기억에 또 내 자신이 한탄스럽다.


이후  달이 흘렀을까. 나는   없이  양반의 고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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