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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Nov 28. 2022

신촌의 진정한 투어리스트

초겨울 발행취소했다가 230106 재업로드

신촌의 중국인 관광객 속 진정한 투어리스트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신촌에 갔다. 왜 하필 비는 주말에만 내리는 걸까. 이 모양 날씨 탓일까, 가는 카페마다 사람들이 밀도 있게 들어차 몇 번이나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이 적당히 있어야 영감도 생기는 법이다. 흐린 날씨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중국인 관광객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희뿌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 신기하게도 비가 서서히 그치더니, 천천히 걷기 알맞은 날씨로 변했다.


실제 피부로 경험했던 신촌은 어느새 책 속에서 읽은 이야기처럼 낡고, 생경한 것으로 변모해 빛이 바랬다. 내가 주도해 만든 철학 스터디가 한창이던 그 시절 카페는 뜬금없이 호프집으로 변했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녀와 나는 저 카페에서 치열하게 철학적 토론을 치고받았다. 발 없는 격세지감만 붕 뜬 마음을 떠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점심시간도 지났는데 어느 음식점 앞 줄이 ‘ㄱ’자로 길게 늘어서 도로까지 이어졌다. 언제부턴가 미슐랭으로 지정됐단다. 그녀와 갔을 때도 나름 맛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줄이 길지 않았다. 다시 또 발걸음을 옮긴다.


신촌 행정복지센터 위 공원에도 올라 하늘 아래 전망을 살펴본다. 도대체 우리가 함께 걷지 않은 땅은 어딜까. 내려오면 줄곧 머물렀던 반 지하방도 그대로 보인다. 이곳에서 우리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참 많은 영화를 봤다.


식당과 카페, 편의점, 노래방, 오락실, 사진관 등 당신 없는 이 신촌에서 우리 추억 서린 옛터들을 유적지 삼아 홀로 쏘아 다닌다. 아직 비가 다시 내리지 않아 우리 갔던 구석구석 장소들을 둘러볼 수 있어 다행이다.


 중국인 관광객들보다 진정한 신촌의 투어리스트는 바로 나다. 아니, 나여야만 한다. 신촌에서 <화양연화> 마지막 장면처럼 추억의 틈새를 들여다볼 무렵,  냄새 공기  스며들어 잔잔히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녀 향취에 물든 장소 저벅거리며 신촌 어귀로 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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