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기 Dec 11. 2022

문학적 야바위꾼의 고백

두 번의 첫 경험과 거짓의 미래 시제

어느 영화 상영회 리플렛에 적힌 소개글 중 일부. 내가 쓴 졸문이다. 아니 수준이 낮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것은 거짓으로 윤색한 글이다.


야바위는 탁자 위에 뒤집은 여러 컵을 무작위로 섞어서 어느 컵에 구슬이 들어있는지 맞추면 판돈의 몇 배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연히 컵을 섞는 과정에서 눈속임을 통해 상대방은 구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자연스레 돈을 잃게 된다.


자 돈 넣고, 돈 먹기. 1만 원으로 5만 원을 가져가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아빠는 담배값~ 엄마는 반찬값~




영화를 보고 비평적 야바위 놀이를 했다.




어느 상영회에 소개글과 작품 설명을 작성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영화적 유대감과 인연으로 시작 글이 언론에 실리게 된다고 한다. 사적 영역과 공적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들은 금전적 계약관계 없이 작업하지 않으니까.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고 글을 썼다. 상영회 사회까지 봐 달라는 부탁도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리플렛을 보니 실감난다. 긴장되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으나 한 달만에 두 번의 첫 경험을 겪는 셈이다. 이제는 불가능할 것이라 단정했던 새로운 경험을 통한 벅찬 감정이 삶 가운데 또다시 실현된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떨림과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이번 상영회 작품 소개글과 세계관(?)을 작성하면서 그가 만든 모든 단편들을 감상했다. 천재적 커리어와 달리 영화적 재능은 솔직히 모르겠다. 한 편은 좋은데, 나머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의 영화는 특정한 태도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면서 끈덕진 기세로 사물과 대상에 집중하지만, 미숙하고 투박하다. 차라리 내 심미안과 통찰력이 부족해 그의 영화적 가능성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하고 싶다.


사실 저 추천사는 허구다. 그 사람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내 영화 설명에 더 가깝다. 거짓으로 쓴 글로 돈을 받는다. 뭔가 복잡 미묘한 기분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저 문구의 대상을 다른 주체로 바꿔 미래에 적용시키면, 허상이 아닌 실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간 하고 싶은 일을 억누르며, 주변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사로 잡혀있던 막연한 불안감도 한계에 다다랐다. 커밍아웃하는 게이나 레즈비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숨김없이, 사사로운 감정을 제쳐두고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비로소 침울한 낙천주의자, 즉, 예술가가 되려 한다. 빠른 시일 내 그렇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신촌의 진정한 투어리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