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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Nov 24. 2022

만남은 인연, 관계는 노력

뒤늦은 후회와 밀려오는 부끄러움

<중경삼림> 1부

양조위가 나오는 <중경삼림> 2부만 수십번 돌려봤다. 그러다 올해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내 나이와 똑같은 영화 속 통조림이 등장하는 1부를 마주하다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홍콩의 반환과 함께 나의 20대도 반납해야 한다는 복잡 미묘한 심정 말이다. 손을 내민다면, 되찾을 방법 있을까. 사무치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금성무처럼 이곳저곳 실없이 전화를 돌린다.


<어벤져스>에서 헐크는 ‘어떻게 그렇게 원할 때마다 화를 내서 변신할 수 있냐’는 취지의 질문에 “항상 화가 나있다”고 답한다. 마찬가지다. 나도 늘상 공허하다.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본원적 고독은 채워지지 않고, 가시질 않는다. 이 순간에 부재의 존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4년 넘도록 사귄 그 친구와 헤어진 지 벌써 1년이 훨씬 넘었다. 당시에는 이런 철없는 행복감이 영원할 줄 알았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정신 팔려 다른 이에 눈을 둘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이 사람과 나는 ‘트루 러브’이기에, 그대가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특정한 실수를 되풀이했다. 그 사이 당신은 점점 멀어져가다 이별을 말했다. 그동안 갈라서자 한 뒤에도 몇 번이고 다시 만났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너와 내가 함께 산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으니까.


우리는 작년 여름에 완전히, 최종적으로 헤어졌다. 허망하다. 만남이 인연이라면 관계는 노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아직도 후회가 밀려오고 죄책감에 짓눌려 피폐함과 상실감만 공간을 가득 메운다. 남들에겐 지나가는 열병일 수 있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상실의 아픔을 1년 넘도록 겪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보고 싶고, 나를 사랑했던  시절  모습이 그립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 맛보지 못하고 그저 적당한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던데, 진짜 사랑을 경험하게 만들어준 당신이 정말 고맙다. 그녀 없이 30대를 맞이하기 두렵다. 아니 불가능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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