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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Nov 26. 2022

균열에 대한 단상

어디서부터 어긋난걸까

Here’s johnny! 나는 영화적 지식에 목 말라 전투적으로 영화를 봤다. 사진은 영화관을 종횡무진 누비던 내 모습.


Let’s starting from the beggining


본격적인 영화 탐구에 돌입한 2017년. 하루에 영화를 5~6편씩 감상한 나날이었다. 그해 내 왓챠에 기록된 영화는 700편가량 됐다. 나는 영화관을 골방 삼아 망령처럼 떠돌며 영화보는 귀신이었다.


그런데 당최 이 놈의 영화는 볼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점차 늘어난다. 계산해보니 대략 3000편을 보면 봐야할 영화는 거의 다 보게되는 셈이다. 올해 기준으로 1100편이 남았다.


내가 영화에 빠진 계기는 총 3차례다. 우선 중학생 시절 데이빗 핀처의 <세븐>을 감상했던 것이 첫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제대하고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데이빗의 영향이 컸다. 인간이 아닌 AI가 우주선 안에서 명대사까지 다 외워가며 보던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도대체 저 영화는 뭐길레, AI가 빠져들게 된 것일까


<아라비아의 로렌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계기는 앞서 에세이에서 밝혔듯, 그녀와의 만남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았고, 모험심이 있었다. 어떤 종류든 한 번 흥미를 붙히면, 잠도 줄여가며 해당 분야에서 일정 궤도에 진입할 만큼 정통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나와 탐구 대상,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 이런 관심사들이 공부 쪽이 아니여서 아쉽기도 하다.


2017년 한 해 동안 본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 물론 더 있다.

??? :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그런데 현실은?


내 집요한 성격과 성향 탓에 우리 관계의 균열이 소리없이 진행됐다. 나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 친구를 위해 돈만 열심히 벌고 책임감 있게 가정을 유지하면, 내 몫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라 믿었다. 즉, 내가 사소한 문제라고 여기는 일들은 모두 그 친구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이쯤부터 술에 빠지면서 중요치 않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아예 신경쓰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됐다. 데이트 코스 짜기, 귀찮은 서류 작업 하기, 옷차림 등 소소한 일상이 하찮게 느껴졌다.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눈을 감으면 머릿 속에서 영화가 상영됐고, 영화를 정복하고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과대 망상 역시 중증으로 치닫게 됐다.


부산영화제와 서울의 여러 영화관에서 발행한 티켓과 포스터.


부산영화제, 부끄러운 기억의 시작

균열은 굉음을 동반한 채 불쾌한 파열음을 내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측됐다. 나는 지금껏 술에 취한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취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2017년 말부터 술에 취하는 것이 곧 블랙 아웃으로 이어졌다. 눈을 뜨면 내 방이나 어느 모텔 침대였다. 올해 완전히 금주할 때까지 '취함=블랙 아웃'의 공식이 성립했다. 나는 부산에서 그 친구에게 제대로 진상과 행패를 부렸고, 머저리짓은 해마다 심화됐다. 이 때부터 절주했다면 음울한 미래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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