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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Nov 26. 2022

불의 발견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인연

지난 2018 팟빵에서 영화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이별의 아픔에서 허우적대며 현실을 살아가다 망각 속으로 흘려보낸 추억이다.


당시 개봉작을 위주로 아는 형과 같이 분석하면서 즐겁게 팟 캐스트를 녹음해왔다. 1화를 제외하면, 대본도 쓰지 않고 즉흥적으로 진행했는데, 그 시절에는 나름 인기를 끌었다.


추억의 팟캐스트들이 인터넷 어딘가를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단편 소설이나 영화에서 생길 법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 이 사건이 현실임을 일깨워줬다.


이달 초순, 내 왓챠 앱의 한 영화 코멘트에 대댓글이 달렸다. <지구 최후의 밤> 관련 코멘트에 달린 대댓글이었다. 작성자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당신의 영화 분석에 공감한다. 친구처럼 느껴져 만나서 대화해보고 싶다’는 취지로 이야기했고, 나는 그 대댓글에 내 카톡 아이디를 적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일주일 전 합정에서 만났다. 이 만남은 4년의 세월과 공간을 거슬러 조우한 인연처럼 다가왔다. 내 팟캐스트에 왓챠 닉네임을 적어둔 적이 없는 데 어떻게 나를 찾았나 궁금했다. 그 친구는 단순히 <지구 최후의 밤>에서 내 코멘트를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신기했다.


배우 박지빈과 MC 그리의 장점을 섞은 잘생긴 얼굴. ‘니뽄삘’ 나는 패션. 공허한 눈망울. 플라톤은 예술을 ‘이데아 모사의 모사’라며 폄하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가 갖춰야 하는 덕목과 인식은 일정 부분 고대 그리스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속된 말로 잘 생긴 놈이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것. 물론 웃자고 하는 썰렁한 농담이다.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행렬> 일본어 포스터. 약 5년 만난 그 친구도 이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와 이번에 만난 25살 친구도 마찬가지다. 싫어할 수 없는 영화다.


나보다 4살 어린 친구의 입에서 빅토르 에리세,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마츠모토 토시오, 크리스 마르케 등 대가들의 이름이 튀어나올 때 나는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이 순간 윤동주와 백석이 시를 통해 목놓아 불렀던 순전하고 때 묻지 않은 이름인 프랑시스 잠과 릴케의 존재감이 시 가운데 낮게 낭송돼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영화와 예술에 있어서는 <백치>의 미쉬킨 공작처럼 사람을 너무 쉽게 믿을 도리밖에 없다.


(너가 25살 때 나 보다 훨씬 낫구나)


인디 음악을 하다 영화에 빠진 상처 많은 친구였다. 이 사람의 본원적 외로움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뭔가 미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남자와 술 안 마시고 카페에서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대화가 한층 무르익을 무렵, 이 25살 친구가 소위 영화를 사랑한다는 이들의 통과의례이자 첫 번째 산인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내 장난기가 발동했다.


<펄프 픽션>을 처음 보고 이 작품이 명작이라는 생각이 단 번에 들었나요? 혹시 그렇다면 이유는 뭔가요?


내가 누구를 평가할 위치는 절대 아니지만, 타란티노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날 때면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아무튼 이 친구도 특이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데, 그럼에도 내 말에 자주 설득당하는 귀여운 친구였다.


세상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남 모를 신비를 간직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아마 우리는 어느 장소든지,  올해 안에 또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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