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퀴터 Jul 06. 2023

내 글을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내 글을 믿어준 사람

학원 학생과 절친이 되다

학원에서 일하다 보면 나와 유머코드가 잘 맞는 학생들이 많지만, 학생들 연령대가 보통 고등학생에서 스무 살 정도다 보니 그들과 진정한 의미의 친구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나는 어떤 학생과 친구가 되었다!


작년 여름, 하원길에 지하철에서 늘 나와 같은 역에서 내리고 같은 출구로 나가는 학생이 있었다. 나와 같은 역에 사는 모양이었다. 지하철에서 인사하면 도착할 때까지 쭉 대화해야 하니 처음엔 일부러 거리를 두고 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마트에서 큰 봉지를 들고 나오는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알고 보니 우리는 서로 도보 5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키우는 먼치킨 고양이를 보러 오라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며칠 후 찾아간 그녀의 집에서 두 시간쯤 실컷 떠들고 나온 나는 소울메이트를 찾았음을 느꼈다. 고양이 보러 갔다가 소울메이트를 찾다니! 그녀의 가치관이나 관심사는 나와 겹치는 데가 너무 많았고 우리의 대화에는 화제가 끊이질 않았다. 그 후로 매주 한 번씩은 그녀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나는 평소 연례행사로 친구를 만나는 편이다). 갖고 싶은 옷, 학원에서 있었던 일, 최근에 읽고 재밌었던 책,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가족 이야기… 대화는 계속 쌓여 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녀는 나보고 글을 참 잘 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 글 쓸 소스도 많다고 했다. 사실 나는 전업 작가들을 남몰래 질투하는 주제에 일기 이외의 뭔가를 제대로 쓴 적은 없었는데, 내 글을 읽어본 적도 없는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 주니 갑자기 자신감이 샘솟았다. 홍대 미대를 나온 그녀의 주변에는 창작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세계 또한 확장되었다.


처음에 포스타입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할 생각을 한 것도 그녀 덕분이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감이 바닥나 있던 시기에 용기와 힘을 많이 북돋아 주었다. 그간 내 좁은 세상에서 너무나 중요해 보였던 직함이나 연봉, 계급사회 속 지위 등이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리 큰 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네 살이 어린 사람이지만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자기 주관적으로 삶을 개척해 왔고, 주변에 나눠줄 정과 사랑이 많은 사람.


이번에 그녀가 삼청동에서 바다를 테마로 설치미술 전시를 연다. 나는 황송하게도 그 전시 서문을 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준비되면 브런치에도 소개할 테니 바다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놀러 오시길!






작가의 이전글 내가 수업하는 모습이 아빠와 닮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