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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Jan 03. 2024

돌아보니 창피한 글

그때는 오버해서 죄송합니다

내 지난 20대의 일을 글로 남겨 브런치북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게 불과 2년 전인데, 그때의 일을 읽어보면 내 20대란 놀라울 정도로 자기 연민에 잠식돼 있는 것이다.


분명 그 당시에는 참 힘들었다. 특히 로스쿨 그만둘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때 왜 그렇게 괴로워했나 조금 우습기도 하고, 자기 연민에 푹 절여진 모양을 보고 있자니 부끄러울 정도다. 아니 변호사 못 된 게 뭐 어때서?! 그때는 변호사 못 된 채 여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참으로 암담했으나, 지금은 아무 느낌 없고 오히려 변호사 안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로서의 일상을 전혀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늘 삶의 척도를 ‘남에게 설명할 때의 멋짐’으로 세웠던 것 같다. 어떤 직업을 택했을 때 내가 일상적으로 하게 될 업무의 내용이라든지 만나게 될 부류의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멋진 외관의 건물로 출퇴근하는 내 모습이나 남에게 명함을 내미는 내 모습, 그리고 그 명함을 받아 든 사람들의 경탄 어린 시선 따위를 상상하며 진로를 정했다. 심지어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던 시절, 내가 중시하던 것은 남자의 외모였다. 연애하는 나를 상상하면 그 남자와 둘이 데이트하거나 대화하는 모습이 아니라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나를 떠올렸다. 정말이지 짠하고 한심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리석은 척도로 삶의 여러 결정을 내린 죄로 나는 불행한 20대를 보냈다. 다행히도 로스쿨 자퇴를 계기 삼아 나는 삶의 가치관을 뒤집게 되었고, 처음엔 물론 혼란했으나 시간이 지나 새로운 가치관에 적응을 마치자 ‘내가 원하는 일상’을 기준으로 삶의 여러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삶에 내 뜻이 아닌 어떠한 결정도 섞여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해 의구심이 없다.


얼마 전, 언니가 인터넷으로 우울증 간이 검사를 해봤는데 너도 한번 해 보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참으로 오랜만에) 그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내게는 우울 증세가 없다. 나는 우울증이 뭔지 안다. 앞으로의 미래가 컴컴하고 그 무엇도 기대되는 게 없으며 죽음만이 유일한 희망처럼 여겨지는 기분.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상태를 벗어난 채 2년째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그래도 그냥 검사를 해 봤더니 5점이 나왔다. 최대 점수는 60점이었고, 매일 울던 전 직장 시절을 기준으로 다시 검사했더니 55점이 나왔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지금의 삶이 내가 결정한 삶이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아닌 경우가 있다. 내가 정신과 의사도 뭣도 아니긴 하지만 ‘스스로의 결정대로 사는 것’이 내겐 우울증 탈출의 열쇠였다.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 정말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돌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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