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부터 다섯시간, 서른여섯번째와 서른일곱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여러 감정이 공존하는 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시월의 발음이 여려서 마음도 이상하리만치 여려지는 달이라고 시월의 초입에서 글을 적어내려 갔는데, 또 한 달이 저물어가네요.
1부터 12, 숫자가 커가는 게 뭔가 완전성을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12월의 춥고도 따뜻한 풍요 앞에 나즈막하게 누워있다가 또 다가올 새해를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아야겠죠. 세상이 소란스럽습니다. 쉽게 입에 담기에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크게 또 가끔은 작게. 아무렇지 않다가도 멍하니 모든 게 이질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나는 어제와 너무 다르고, 한달 전과도 다르고. 11월이 다가오면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아져야 한다는게, 그니까 올해의 말소를 반듯이 마주해야한다는게. 이 모든 게 너무도 한 끗차이라 기시감이 듭니다. 나도 그곳에 가려했지. 그 가게는 친구가 추천해줬지. 모두 거창할 것 없는 아주 티끌만한 차이들로 빗겨나갔기 때문에, 어떤 세계에서의 나는 그 언젠가의 불행을 피하지 못했겠지요. 살아남은 자들이 술잔을 기울입니다. 기간을 가늠할 수 없지만 우린 이렇게 살아남아 살아가다, 각각의 죽음이 또 찾아오고.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죽기위해선 살아남아야하기에
금토일 주말내내 몇번의 술잔을 부딪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해롭습니다.
해롭지 않으며 내게 위로가 되어줄 것들은 없을까요?
무엇이 되든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조금씩은 나를 부식시키고 있습니다.
마모된 귀퉁이로 오늘의 체온을 남깁니다
몸도 마음도 공중에 부유해있는 것 같습니다. 내 우울감 두 큰술.
오늘은 짧게 여기서 마칠래요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2022년 10월 31일 PM 3:55
가늘고 길고 주렁주렁.
아침에 눈뜨자마자 11월의 달력을 마주하게 된 저의 짧은 감상평입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11월이 왔네요. 12월은 너무도 자태가 연말임이 분명해서 오히려 덤덤합니다만, 11월은 달갑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직까진 분명 가을의 축에 속하긴 하는데, 무서운 기세로 날은 더 추워지고 있고, 연말이라 부르기엔 아직 일러서 오랜 인연들을 명분없이 불러내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출퇴근길에 노랗게 익어 있는 은행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해가 저물어가는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인생도 일년도 결국 순환같은거라서, 오랜 불행도 질긴 행복도 없는 편입니다.
두가지 좋은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제 첫번째 좋은 일은, 야금야금 보내드린 편지들을 묶어서 브런치에 글을 모두 올려 저의 과업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날 것 그대로의 이메일이 그 상태 그대로 온라인 세상에 태어나선 안될 것 같아서 조금씩의 편집과 수정을 거쳤지만요. 못할 말은 삼켜내고 할 말은 더 꾸며내고. 그렇게 약 30일치 정도의 편지들을 한데 묶어놓으니 대략 90분분량의 글이 생겨났습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도 응모가 되었는데, 이것도 일이 잘 풀린다면, 그것도 좋겠네요.
두번째 좋은 일은, 바라고 바라던 교환학생 장학금에 덜컥 붙었다는 겁니다! 치솟는 달러 환율이랑, 막상 받아보니 조금은 아기자기한 월급, 그리고 그 밖에도 들어갈 돈이 많은 몸뚱아리 때문에 쌓여가는 걱정이 조금씩 부피를 늘려갔습니다. 이전에 넣었던 다른 장학금은 빠르게 광탈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더 큰 금액의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어서 시름을 많이 덜게 되었습니다. 수영도 요가도, 라식도 조금은 부담없이 누려야겠어요. 그런데 앞서 말한 불행과 행복의 순환법칙때문에, 저는 이런 행복한 순간들이 찾아와도 마냥 기쁘게 즐기지를 못하겠습니다. 이러다 또 뜻밖의 불행은 나를 찾아와 거침없이 노크를 해대는 편이니까요. 항상 어딘가 매달려 있는 마음. 그 불안정함. 평생 안고 갈 나의 불안이겠지요.
하지만 앞으로도 일은 잘 풀리겠죠. 꼬이면 또 얼마나 꼬인다고요. 이미 진즉 그리고 잔뜩 꼬여져있던 삶의 실타래를 풀면서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더 꼬인다고 해도 전혀 놀라울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제게 찾아온 행운을 귀하게 여기면서 언제 추락이 덮친다해도 전혀 개의치 않아야죠. 코웃음 치며 뭐든 다 뚫어낼 만반의 준비를 하며 언제든 기다리는 마음으로 있어야죠.
내일부턴 또 새로운 일정이 추가됩니다. 11월부턴 월수금 오전에 요가를 다니거든요. 얼마나 피곤해할진 모르겠지만, 이젠 노는 일도, 질긴 약속들도 다 끝났으니까. 원래의 정직한 수면패턴을 회복해야겠죠. 요가와 수영으로 아주 단단하고 유연해지겠어요.
문득 수영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유독 좋은지 생각해봤더니, 내가 잘해서 좋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그 경계가 흐려집니다. 좋아해서 잘 하게 되고, 잘해서 내가 좋아하게 되고. 제겐 대표적인 운동들로 발레와 수영이 그런 것 같습니다. 발레는 좋아하는 쪽이고, 수영은 잘하는 쪽. 그러나 어느덧 하나의 집합에 묶이게 된 나의 운동들.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고 잘하는 걸 좋아하고 싶습니다. 요가는 어느 쪽에 먼저 속하게 될까요?
바쁘지만 건강하게, 헐렁대지만 똑부러지게, 빠짐없이 척척 준비해나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장학금까지 받게 된 김에 뉴질랜드행이 이번에야말로 무사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치 식장 들어갈때까지 모르는 결혼식처럼, 저도 출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나는야 해피엔딩을 가질거야~
위로와 사랑을 잔뜩 두고,
2022년 11월 1일 PM 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