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하늘의 넓이와 바다의 깊이를 우물만큼만 이해한다.
나도 19살 때는 내가 20살에 대체 어떤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적당히 대학을 가고 나니 이제는 졸업하고 나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19살 때 내가 상상한 20살은 모두 대학생이었다. 대학생 때 내가 상상한 졸업생은 모두 적당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막상 졸업할 때가 되고 나니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하는 일들을 찾는 게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은 이미 학생 때부터 스펙이며 경력이며 이력서의 빈칸을 척척 채워두었었다.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얘기는, 우리 큰일 났다 였다.
19살 때의 나는 20살에 대학을 못 가면 내 인생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수능을 다시 보려는 친구들이나,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인생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기다리던 대학생의 시작은 우습게도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도였다. 막상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1번, 2번씩 수능을 다시 본 친구들은 물론, 다른 공부, 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1년 2년, 길면 몇 년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 구나 싶었다.
그런데 또 졸업을 앞두고, 하나둘씩 졸업한 친구들이 자리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어쩌다 조금 졸업이 늦어진 나는 그놈의 인생의 가이드라인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졸업은 해야 하는데 이렇다 할 경력도 경험도 없으니 이번에야 말로 내가 뒤쳐졌구나 싶었다. 억울했다. 그때서야 나 편하자고 이것도 길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경계에 서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전쟁이라는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척박한 땅에서 시작조차 가난했던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산업화, 민주화를 꿈꿨으며, 부모들은 땅 팔고 몸 갈아 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국 2022년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바라보아도 자랑스러운 나라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만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나쳐온 수십 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좀 더 좋은 대학에 가려고 어린 나이부터 몸부림치고, 좀 더 나은 회사에서 일하자고 젊은 청춘은 햇빛을 보지 못한다. 막상 이루려던 바를 이루고 나니 나라를 지탱해온 시대정신은 사라지고, 과정만 남아 그 파이프라인을 타고 온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떠다닐 뿐이다.
우물 안 개구리구나 싶었다. 19살 때는 대학이라는 우물에, 대학생 때는 취업이라는 우물에 갇혀있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게 우물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우물을 파는 법만 배웠지 우물을 나가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냥 적당히 취업해 우물 속에서 살자니 기분이 나빴다. 계속 파이프에 들어있자니 내가 휩쓸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른 나라로 와버렸다.
사는 곳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이왕 사는 거 우주먼지로 사라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나면, 더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고 좀 더 좋은 관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 어이없는 삶을 좀 더 기쁘게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