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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Feb 07. 2024

백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수비망록 EP. 06] :: 갓생 살아볼 수 있을까

벌써 2월의 첫 주가 빠르게 지나고 있다. 여전히 느즈막한 오전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딱히 무언가 뜻깊게 이룬 것은 없다. 자유 수영을 정해진 요일마다 꾸준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영어 회화 공부도 멈췄으며, UX 관련 강의는 아직 결제하지 못했다.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갖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뭐랄까. 뭔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스타트를 끊은 것 같았다. 정해진 요일에 방문하는 학습지 선생님이 '이 학생은 숙제를 전혀하지 않았네요.' 라는 말을 부모님께 전할까 두려워 급하게 답안지를 베낀 학생이된 기분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다 그만하자 싶었다. 2월부터 시작해보자는 것도 놓아버렸다.


목표와 다짐을 털어버린 후 게으른 일상을 반복했다. 글을 쓸거리도 없으니, 브런치 로그인 이력은 1월에서 멈췄다. '정말 다 귀찮다.' 라고 느낄무렵, 글쓰기는 운동과 같으니 글쓰기 근육을 기르라는 브런치의 알람을 받았다. 글을 써내려갈 글감도 없거니와, 별 일이 없었다. 뭘 써야하나 싶어 마지막 업로드된 브런치 글의 일자와 오늘 일자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봤다. 생각보다 그동안 꽤나 많은 이벤트들이 발생했다.




헌혈을 했다




2016년 12월을 마지막으로 멈췄던 헌혈을 했다. 한 때 주기적으로 헌혈을 했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피곤함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헌혈을 하지 않았다. 내 혈액형은 O형인데, O형 혈액은 항상 보유 현황이 적다고 표기된다. 대한민국 인구의 27%가 O형이라는데, 만성적인 O형 혈액 부족 현상은 의학계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겐 도움이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헌혈을 다시 주기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헌혈의 집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갔는데, 평일 이른 시간임에도 생각보다 헌혈을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방학기간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헌혈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도 보여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 대한적십자사에선 'MY FAVORITE ME' 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Z세대의 관심과 감각에 맞는 캠페인과 광고를 선보이고 있는데, 그게 영향을 준건가? 싶었다. 개인적으로 헌혈을 패셔너블하고 힙한느낌으로 전달하는 영상광고가 꽤나 마음에 든다.





반려견의 방광결석 재수술


5살을 넘긴 우리집 막둥이. 어려서부터 이래저래 잔병치레가 꽤 많았는데, 3살 무 생각치도 못했던 방광 결석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소변 누는 것을 불편해하더니 피가 섞인 혈뇨를 보기 시작했다. 새벽녘 결석이 요도를 막아 소변을 보지 못하는 증상을 보였고, 급히 24시 동물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다른 단골 동물병원에서 첫번 째 결석수술을 받았다.


최근 슬개골을 불편해하는 것 같아 X-Ray를 촬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강아지의 방광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결석들이 보였다. 나 편하자고 자주 간식을 주고, 사람 음식을 준게 화근이었다. 빠르게 수술 일자를 잡아 재수술을 진행했다.




통증도 있고, 정신이 없었을텐데도 병문안을 가면 미친듯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살도 꽤 빠지고, 전과는 다르게 얌전해진 성격이 낯설면서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실밥을 풀고 넥카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의 강아지는 다시 제멋대로인 본래 성격으로 돌아왔다. 자신만의 루틴대로 행동하고, 꽤나 성격있는 녀석이 가끔 얄밉긴 하지만 아픈 모습을 보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드디어 간이대지급금을 받았다


밀린 임금과 정산받지 못한 퇴직금의 절반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간이대지급금이다. 고용노동부 진정 후 사업주 확인서를 받으면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간이대지급금을 신청할 수 있다. 간이대지급금은 최대 1,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데 나는 최대 금액을 수령할 수 있었고 나머지 체불금액은 민사소송을 통해 받아내야 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포스팅을 봤을 때 2주 정도면 끝나겠거니 했던 것이 기여코 한 달을 조금 넘겼다. 느긋함을 갖고 대처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늦어지고 답답하게 진행되는 행정처리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은 하루 이틀이면 처리되던데, 왜 내 것만 이럴까.' 싶었다. 답답함을 억누르고 담당자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통화를 마친 후 5분도 채 되지 않아 간이대지급금이 입금되었다. 일단 처리되었으니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순식간에 이곳저곳으로 빠져나가는 돈을보니 내 돈이 내 돈같지 않았다.


다시 또 한 번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법률구조공단에 방문해야한다. 임금채권의 경우 소멸시효가 중요하다고하니 빠른 시일 내에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법률 용어를 보고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직까진 도산하지 않은(?) 회사에서 빠르게 남은 임금과 4대 보험료, 퇴직금까지 처리해주길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감일까.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이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썩 달갑지 않다.





나도 한 번 갓생을 살아볼까 싶은 마음에 새벽 자유 수영을 해보았다. 갓생은 커녕 당일 나는 피곤함에 휩쌓인채 낮부터 늦은 저녁까지 퍼질러 잠을 잤더랬다. 게으름에 익숙해져 버린 나로선 아직 갓생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갓생을 살아야만 성공에 가까워지고, 남들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것일까?


1분 1초를 의미있게 보내고,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깨우침을 주는 자기계발서나 콘텐츠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사람들에게 행동과 실천에 대한 동기를 주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목표의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고, 낭비 좀 한다고 해서 세상으로부터 도태되고 소외되고 패배한 듯한 인식은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희노애락의 정도가 특정 수치로 정해진 듯 개개인에게 다같을 수는 없다. 짠맛과 단맛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듯 말이다. 각자의 삶을 즐기고, 살아가는 모두가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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