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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May 22. 2024

인생에서 손꼽을 만 한 최악의 면접을 봤다

[백수비망록 EP09] :: 길에서도 마주치지 말아요

눈깜짝할 새 겨울의 끝자락부터 여름의 시작까지 지나가고 있다. 실업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기간도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자기소개서를 다시 써내려갔다. 내 인생에서 직업 또는 직무와 관련된 특별한 이벤트가 몇 없었다. 남들보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장점이나 이슈가 있었나? 고심고심해도 내놓을만한 잘난점도 특별한 경험도 없었다. 입꼬리를 내려가며 한숨을 숨쉬는 쉬길 반복하며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다. '나름 힘들게 써내려간 자기소개서를 진심되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심과 함께.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일자리를 주욱 둘러봤다. 내가 새롭게 하고 싶어하는 직무는 죄다 경력직을 채용하길 원했고, 그나마 경력이 있는 직무는 지원해 볼만한 곳이 몇 안됐다. 또 다시 한숨을 내리 쉬었다. 명치 끝이 꽉 막힌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며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댔다.


집과는 거리가 좀 있는데다 지하철을 3번이나 환승해야 하는 곳. 그리고 내 경력으로 비벼볼만 한 채용공고를 발견해 이력서를 넣었다.


그 선택이 최악의 면접 경험을 겪게 할 줄 몰랐다.






생각해보면 면접 제의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뭔가 쎄했다. 입사지원 하루만에 연락이 온 곳인데다 5~6곳 정도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단 한번의 면접제의가 없었기에 면접이 정말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쌔한 직감을 무시한 채 면접을 보러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대망의 면접날. 날도 후덥지근한데다 해는 떴지만 뭔가 한꺼풀 덮힌 듯한 하늘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더랬다. 면접 40분 전에 근처 커피숍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경력직 면접인만큼 직무와 관련된 질문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면접 10분 전 회사에 도착해 담당자를 만났다. 2명의 면접관이 면접을 진행했는데, 그 중 한 명은 늦기까지했다. 면접이 시작되고 집에서 거리가 좀 멀지 않냐는 질문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시도하려는 것 같았으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조금 물어보더니, 이전 직장을 그만 둔 이유와 퇴사 후 재취업까지의 공백이 길어진 이유를 물었다. 그 질문은 면접 사항에 필수적으로 있는 질문사항 같았고, 임금체불로 인해 퇴사한 나의 답변을 들은 면접관은 갑자기 실업급여에 대해 자기네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받아본적이 없네, 받으면서 쉬면 참 좋겠다 등등..





곧이어 직무와 관련된 프로젝트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내 답변에, 갑자기 갸우뚱 거리기 시작하더니 본인들 회사와 관련된 프로젝트 경험은 없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유사한 분야의 프로젝트 경험은 있으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한 면접관은 우리 비즈니스는 쉽지도 않고 어렵다, B2B 및 B2G 관련 사업 위주로 하기 때문에 사업 지식이 왠만큼 있지 않고서는 일하기 힘들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 곧이어 내 이력서를 주욱 내려보던 다른 면접관은 다짜고짜 '이런 저런 경험은 많네?' 라며 혼잣말하듯 반말하기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디자인은 이런 경력으로는 어디 신입으로도 들어가기 힘들지않나?'

 

반말 면접관은 나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나는 디자인 직무로 해당 취업공고에 지원을 하지 않은데다, 몇 년전 경력사항을 보며 따지는 묻는 그가 의아했다. 순간 디자이너 면접을 보는건가?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하며 그의 건방진 태도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제안서, 기획서 작성 등의 직무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지원한 것인데 약 4년간의 경력을 싸그리 무시한 채 이미 난 합격 고려 대상도 아니라는 듯 이상한 쪽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봐봐~ 뭐 이것저것 안 해본게 없어. 그냥 얕게 얕게, 제대로 길게 한 건 없는 것 같네.' 라며 다른 면접관에게 대화하듯 말했다. 나를 무시하는 발언. 사람을 면전에 앉혀놓고 도대체 왜 불렀는지 의아한 상황들을 본인들이 만드는 것도 모르는채 다른 면접관 역시 합세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들은 제안서, 기획서 작성 분야 뿐만 아니라 마케팅, 영상 제작, SNS 홍보 등의 업무도 봐야한다는 말같지도 않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략기획부서라며 본인들이 어떤 직무를 새롭게 채용하는지 그들조차 까먹은 듯했다. 바쁠 땐 야근, 철야, 주말출근까지 해야한다며 법적으로 당연히 지급해야 할 수당을 마치 회사의 거대한 복지인냥 늘어놨다. 또 다시 본인들 비즈니스에 대한 난이도 관련 주저리와 함께 '너 그래도 합격하면 여기서 잘 구를 수 있지?' 라는 의미를 내포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도 뭐 들어오면 금방 적응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네"


이와 함께 자신들 회사의 비즈니스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신입으로 쳐서 연봉을 줄 수 밖에 없다는 레전더리한 말을 남겼다.






내 평생 이런 면접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봐온 면접 중 이렇게 이상하고 기이하며 경우없는 면접은 살다살다 처음이었다. 충격이 커서인지,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야기들은 몇 안되지만 정작 직무와 관련된 경력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10분이 채 안됐던 것 같다. 좋좋소에나 나올 법한 인테리어에 면접관까지. 회사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보이고 느껴지던 회사의 분위기.


최악의 면접을 선사한 면접관의 말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임금체불 문제로 퇴사한 이야기를 듣고 반말 면접관이 말했다.





'인생에 있어 쉽게 경험하지 못할 최악의 사람을 만났었으니 앞으로는 사람 보는 눈이 더 좋아질 거예요.'



내 임금과 퇴직금 일부를 아직까지도 주지 않는 이전 직장의 대표도 나쁜 것은 맞으나, 인격적으로 모독감이나 모욕을 선사한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사람이다. 오히려 제발 잘됐으면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인생에서 겪은 최악의 사람, 아니 사람들은 당신네들 딱 두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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