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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Mar 11. 2024

동종 업계 이직은 죄악인가

삼성, 하이닉스 그리고 마이크론 사태를 바라보며

미국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최근 엔비디아 주식이 핫하다는 건 모두 다 알 것이다.

chat GPT 같은 AI 바람을 타고, 이른바 AI 반도체가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AI 반도체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HBM (High Bandwidth Memory)라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다.


대한민국은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답게, 메모리 반도체 1,2등 기업이 모두 대한민국 소재의 기업이다.

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앞서 말한 HBM 기술도 단연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기술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 

통상적인 우리 모두의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메모리 반도체 3등 기업인 마이크론이 

무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를 제치고 HBM3E 양산을 시작한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믿음이 깨진 일부 대한민국 언론들은 충격에 빠진 듯, 일제히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4/02/28/4KUMVEIMT5A6HI7ARH5X5GRI64/ 


그리고 얼마 후, 

그 이유를 알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시끄럽게 쏟아진 기사. 

하이닉스에서 20년간 설계 업을 하던 엔지니어가 최근 마이크론 임원으로 이직을 했고, 

이러한 이유로 심각한 기술 유출이 발생했다는 뉘앙스의 기사들이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D6JKJO00A


심지어, 그 이후에 나온 기사들을 보면,

HBM 기술 관련하여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며, 

대한민국 반도체 기술 유출이 심각하다는 내용들에 대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을 두고 현대 사회의 이완용이라느니, 실명을 공개해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등

애국심이 넘쳐나는 일부 대한민국 국민들의 분노 넘치는 댓글까지 볼 수 있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반도체 분야에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기적적인 성과를 이뤄낸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높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mk.co.kr/news/business/10960045  



어찌 보면 국내 반도체 기업에서 미국으로 이직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내 입장에서,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들보다는 주목받지 못한 반도체 기술에 종사한다는 점이겠지만)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죽을죄를 진 것인가? 같은 의미로 나도 죽을죄를 진 것인가?

왜 사람들은 그들이 미국 회사로 이직한 것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는가? 

대체 그들은 1,2위 반도체 회사를 두고 3위 반도체 회사로 이직할 수밖에 없었는가?




내가 Q사로 이직할 당시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있었다.

나의 경우, foundry에서 이직한 것이었기 때문에 경쟁사 이직이 아니어서 상관없었지만,

삼성 LSI 같은 경우엔 그 경쟁사인 Q사로 대거 인력이 유출되는 바람에, 

소위 '빡'친 삼성 인사팀 쪽에서 한국 지사 쪽에 문제 제기성으로 이직 인원들에 소장을 들이밀었고,

그 덕분에, 이미 offer까지 받았던 일부 엔지니어들은 그 offer가 취소되면서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


위의 기사에서도 나오지만, 

보통 우리나라의 반도체 회사에서 퇴사할 때에는, 다른 경쟁사로 이직하는 것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일종의 동종 업계 이직 금지 조항이 있다.


헌법 상 위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도 기업들이 이 독소 조항을 넣는 이유는,

그만큼 이 반도체 기술이라는 것이 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반증일 수도 있을 테다.


그렇다면, 이 독소 조항을 어겨가면서까지 그는 왜 SK하이닉스를 버리고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것일까.

기자들은 그저 3등인 마이크론이 우리나라 기업들을 이겼다는 사실에 분해, 

이직한 그 사람을 죄인 취급하며 기사를 썼을 테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다.


"아무리 설계 분야 20년의 경력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마이크론 임원으로 갔다는 이유 하나로 HBM 관련 기술이 그렇게 좋아졌다고?"

"설사 그렇다고 한다면, 그 정도의 초 일류 인재를 왜 하이닉스는 그렇게 방치한 거지?"

"그 사람이 만약 하이닉스에서 임원을 달며 승승장구했다면, 과연 마이크론으로 떠났을까?"

 

2021년쯤 내가 삼성 재직 시절, 회사 내부에서는 고과에 따른 연봉 역전 이슈가 잠깐 크게 터진 적이 있었다.

골자는, 책임 급 5-6년 차의 연봉보다, 이번에 진급한 책임 1년 차의 연봉이 더 크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의 불만은 이제 고이디 고인 10년~15년 차 직원들은 더 이상 회사가 챙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어찌 되었건 공채라는 이유로 매년 직원을 뽑아야 되는 회사는, 

직원들의 연봉을 무제한으로 상승시켜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각 직급에는 연봉 상한선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라도, 

임원 라인을 타지 못한 채 부장으로 직급을 마무리한다면, 

결국 그 마무리는 다른 부장들과 마찬가지의 상한선에 가까운 연봉으로 수렴되어 

회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 우리 팀에서는 3명의 수석 부장님들이 퇴사했다.

그분들은 모두 팀 내에서 인정받고 있는, 소위 임원 라인으로 갈 수 있는 실력 있는 부장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퇴사한 시점은, 정확히 다음 임원이 누구인지 가시화된 직후였다.

그렇게 한 분은 미국으로 가서 새 삶을, 

다른 두 분은 협력업체의 임원 급으로 가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셨다.


본인들의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어딘가 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번에 기사화가 되고, 누군가로부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마이크론으로 가신 그분도, 

어쩌면 우리 팀의 그 수석 부장님들과 그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은 크게 다른가?

미국은 확실히 다르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연봉 상한선도 없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받게 되는 연봉의 기대치와 추가적으로 수령하게 되는 주식 보너스의 가치가 커진다.

오죽하면, Q사에서 senior staff 이상만 달면, 은퇴하는 까지 무리 없이 일하며 있다고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하겠는가.

몇 개월 전, 폭등한 주식으로 인해 엔비디아의 많은 엔지니어들이 수백억의 부자가 되어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고민한다는 기사는 이미 유명해서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언론이든 국민이든 대한민국의 미래는 반도체라고 쉽게 떠들지만,

그 반도체에서 종사하는 사람의 가치가 정말 그만큼 존중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의문이 들곤 한다.


정말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국가의 반도체 인력이 유출되는 것이 아깝다면,

그들에게 그 이상의 어떤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국가가 나서서 연구 개발 지원비를 삭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는 것도 우습긴 하다.


그렇다고 그 누군가들 처럼 직종을 때려치우고 생명을 위협하며 국가에 반기라도 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엔지니어들은 본인들가치를 나은 곳에서 인정받을 있는 기회를 모색할 기본적인 권리는 있다.

기술에 국뽕은 없다. 기술은 금모으기 운동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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