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ry Aug 14. 2024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

여름 안에서


입추가 지났지만 전국이 폭염에 시달리는 와중에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에는 어딘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어 전국에서 가장 시원하다는 대관령 부근 자연휴양림 숙소를 검색해 봤지만, 대관령의 명성이 나에게까지 알려졌다는 건 전 국민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8월 말까지 모두 예약 완료…


운문산 자연휴양림의 작은 평형 숙소 하나를 용케 예약하는 데 성공했으나, 가만히 있어도 목뒤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는 떠나지 말고 머물러라는 명령을 내리는 듯했다. 휴가 첫날인 어제는 은행 두 곳에 들러 적금 2개를 가입하고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3년 동안 5천만 원 모으기라는 비장한(?) 목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만으로 흐뭇함과 부담이 동시에 몰려왔다.


오늘은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브런치를 해치웠다. 평일 오전 11시 무렵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삶이라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기분이 든다.

오랜 백수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취업이란 걸 해서 아직,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는 게 대견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그 오랜 세월을 백수로 까먹고 있었다는 게 아깝고 한심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늦었다.”라고 박명수 씨는 말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다시 시작할 적기”가 아닌가 싶다.  


관성적인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돈’이 주는 안락함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고된 시간을 보상받는 듯 하지만 손에 쥔 모래처럼 통장을 스쳐 어딘가로 빠져나가버리는 돈들의 행방을 곰곰이 따져보면서 다시 새로운 달을 시작하는 일의 반복일 뿐이었다.  


다시 취업을 하면서 적은 돈이지만 매달 급여를 받는 일을 한다는 것의 고마움을 가슴속에 새길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일을 하기 위한 건강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젊은 시절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일을 하기 위해 매일 4km씩 뛰고, 만보를 걷는다. 중년 이후에 지방은 먼지처럼 금세 쌓이고, 근육은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취업을 하기 전까지 일을 하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노쇠한 부모님을 돌봐야 해서,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온갖 핑계를 들이밀면서 요리조리 일하는 인구에 포함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해 왔다. 이제는 부모님이 곁에 계시지 않고, 나이는 어느새 앞자리가 바뀌어있지만, 해보지 않은 일이라 재미를 찾는 게 수월한 면도 있다. 좀 더 빨리 일을 시작했다면 좀 더 여유롭고 윤택한 중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괜찮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다시 시작하기 좋은 때”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에 지쳐가는 요즘이지만, 머지않아 뜨거운 열기가 잦아들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고 가슴 한편 스산해지는 겨울이 오면 작열하는 태양이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샛별 소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