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에 남은 모든 기록은 승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패자는 말이 없고, 단 한 줄의 변명도 남기지 못한다.
영화 <엘리자베스>와 <골든 에이지>를 연이어 본 후 메리 스튜어트(1542~1587)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를 봤지만, 그녀에 대한 궁금증만 더해졌을 뿐이다.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찾다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를 발견해서 대출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책은 읽어본 기억이 없어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전기(傳記)’라는 장르는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평소 거의 읽지 않았는데 슈테판 츠바이크의 필력(筆力)은 실로 가공할 수준이었다. 불과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음에도 왜 그가 첫 번째로 손꼽히는 전기 작가인지 수긍이 될 정도로 가독성과 몰입감이 훌륭했다.(안인희 번역도 물흐르듯 깔끔한 느낌)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평전 덕분에 그녀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크게 올라갔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이 책은 대체로 메리 스튜어트를 편들어주는 내용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결정적인 순간 언제나 남자 때문에 그릇된 결정을 해서 자신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운명까지도 위태롭게 했던 여왕으로 기억에 남은 그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동정과 편애를 받으면서 엘리자베스(1533~1603)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참수까지 당해야 했던 비운의 군주로 그려진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 결과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후세의 관점만 내세우면 잘못 판단하기 쉽다. 실패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부르기는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위험한 투쟁을 감행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거의 20년에 걸쳐서 이 두 여인 사이에 벌어진 게임은 사실은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메리 스튜어트의 왕권을 도로 찾기 위해 일어난 많은 모반들은 대체로 조금만 더 운이 좋고 조금만 더 작전을 잘 짰더라면 정말로 엘리자베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만한 것들이었다. 두세 번은 간발의 차이로 죽음의 일격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결론적으로 보면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 사이의 승부를 결정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따랐고 메리 스튜어트에게는 언제나 불운이 따랐다. 이 두 사람은 힘으로 겨루거나 인물로 겨루면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은 운명의 별자리가 달랐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중에서
메리 스튜어트에 대한 애처로움이 정점을 이룬 대목이다. 영국의 전성기,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엘리자베스와 비교라니…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를 위해 자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메리 스튜어트는 자신을 위해 스코틀랜드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메리 스튜어트가 조국 스코틀랜드에 자신을 기꺼이 바쳤다면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들 제임스 6세(1566~1625)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되어 튜더 왕조를 마감하고 스튜어트 왕조를 시작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가 너무 흥미진진하고 멋진 표현이 많아 소장하고 싶어서 확인해 봤더니 절판되어 재고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고매장에도 재고가 없어 중고서적 가격이 5만 원이 넘는 귀한 책이다. 물론 가격은 많이 오르겠지만 어떤 출판사에서라도 꼭 출간할 것 같은 책이니 묵묵히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