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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게 죄라면

넷플릭스 시리즈 <죄인>

by Rosary

넷플릭스 시리즈 <죄인 The Sinner>을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주인공 해리 역할의 배우가 낯익어서 크레디트를 찾아보니 세상에, 빌 풀먼이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1995>에서 산드라 블록과 호흡을 맞췄던 그 빌 풀먼이 노인이 돼서 불쑥 나타난 듯한 느낌을 받은 걸 보면 그동안 빌 풀먼 작품을 많이 놓쳤던 것 같다. <너의 모든 것 4. 2023>에서 여주인공 케이트의 아버지로 등장한 그렉 키니어의 모습만큼 충격적이었다. 빌 풀먼이 1953년생이니 어느새 칠순을 훌쩍 넘겨 노인이 된 건 당연하건만 배우들의 대표작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어 세월이 이렇게나 빨리 흘러버린 게 야속하기만 하다.

1995.jpg 당신이 잠든 사이에. 1995

처음 본건 <죄인>의 네 번째 시리즈였으니 빌 풀먼도 늙을 대로 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에서 빌 풀먼의 배우로서 존재감은 젊은 시절보다 훨씬 강렬하다. 주인공인 형사 해리는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형사를 은퇴한 후에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렇게 상처 투성이인 형사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죄인”들의 모습에서 자신과 닮아있는 상처의 근원을 밝혀내고 그들에게 상처를 준 진짜 “죄인”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상처의 가장 밑바닥에는 가족들이 도사리고 있다.

sinner 1.jpg 시즌 1. 2017

유튜브를 보다가 크게 공감한 댓글이 있다.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그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고 그 추억으로 살아가지만 학대를 일삼은 나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떨쳐내기 위해 평생을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불공평함으로 가득 찬 인생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이고 억울한(?) 복불복은 바로 어떤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냐는 것이다. 요즘 2030들의 절망 포인트와 맞닿아 있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sinner.jpg 시즌 2. 2018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보니 부모의 경제력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자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성품일 것이다. 부모의 가장 싫은 점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가장 소름 끼치고 절망적이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만은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자식이 빼닮아서 슬픈 부모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끔찍해도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 시절 압도적으로 웃는 날을 가득 선물해 준 부모님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인생의 대운이 아닐 수 없다.

sinner 2.jpg 시즌 3. 2020

호흡이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요즘 드라마들에 비해 <죄인>은 느리고 다소 답답하다. 그렇지만 천천히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볼 수 있어 오히려 반가운 드라마다. 가볍고 현란한 드라마에 지쳐있다면 가슴 한 곳이 묵직하고 먹먹해지는 <죄인>을 한번 시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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