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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Jan 09. 2024

옛 인연, 새로운 인연

숲을 확장해나가는 여정

 며칠 전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을 뵙기 위해 모교를 찾았지만 결국 뵙지 못한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벌써부터 가물가물하지만 초5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이런 꿈을 꾸지 않았나 싶다.


 어제, 신입생 OT가 끝나고 친구와 같이 집에 가는 길이었다. 문득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 생각이 났다. 며칠 전 꾼 꿈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 입학하는 학교와 모교가 있는 동네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빙 돌아서 옛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정말 오랜만인데, 변한 건 거의 없었다. 추웠지만, 모교를 한번 보고 싶어서 더 깊숙이 들어왔다. 마침 학교에 불이 켜져 있었다. 방학중에도 돌봄 교실을 운영하는 것 같다. 나는 외부인이니 조금 눈치가 보였지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1층부터 5층을 쭉 둘러보았다. 사실 선생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전부터 홈페이지를 살폈으나 교직원 정보가 나와있지 않아 아직 선생님이 근무하시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소식을 아는 누군가를 만나길 바랐다. 선생님이 학교에 근무하시는지 알면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교실마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아무도 계시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조용히 나오려던 참에,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누구 찾아오신 건가요? “

“아.. 저.. 혹시 (-) 선생님 아직 여기 근무하시는지 궁금해서요..”

“아 (-) 선생님 제자구나!”


 선생님을 아시는 분인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1-2년 전 다른 학교로 가셨다고 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쉬웠다. 어느 학교로 가셨는지 여쭤보지는 못했다. 나는 이럴 때만 내향인..

집 가는길. 어둑어둑

 몇 년 전 일이라고 벌써 희미해진 추억이지만, 아직도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 초5 때 담임선생님께선 쉬는 시간마다 조용히 책상에서 책 읽고 있는 나를 부르시곤 하셨다. 그때 나는 친구가 없었는데, 소심한 성격 탓이었을까? 소설을 좋아해서 초5-6 땐 책만 왕창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를 자주 부르셨나 보다. 선생님의 친근하고 인자한 눈웃음이 아직도 생각난다. 매 수업마다 책을 한 권씩 골라가라고 하셨던 논술 과외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기억나는 책이 <바보 빅터>다. 나는 어둠을 싫어해서 저녁에 엘리베이터 타는 걸 무서워했는데,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선생님이 그걸 기억하신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소중한 이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자주 볼 수 없다는 점이 섭섭하지만,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라고 그랬다. 좋은 인연, 앞으로도 추억하고 이어가야지. 매년 찾아갈 거라고 몇몇 친구들과 선생님께 일러두었다. 약속해 놓으면 지킬 확률이 높아진다고 들었기에..


 내가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OT가 끝난 지금 시점, 어느새 내 마음속엔 설렘이 자리하고 있다. 난 어느 외딴 숲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정성스레 가꾸고 키워온 숲의 경계에 서있을 뿐이다. 이제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숲의 낯선 길을 따라가야 할 때. 새로운 나무를 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면 된다. 그렇게 가다 가끔, 예전의 익숙하고 아름답던 숲이 그리울 땐 다시 찾아가면 된다.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테니. 숲을 확장해 나가는 여정.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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