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를 그만둔 이유

지나온 회사 중 하나를 그만둔 이유입니다.

by Han

3년 남짓 온라인 게임 라이브 서비스 담당했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게임 회사는 생각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몸 담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이 라이브 서비스라는 게 말이죠.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토대에다가 매출을 내기 위한 이벤트만 추가하면서 매출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란 말이죠.


물론 중간중간 최적화도 하고, 새로운 콘텐츠도 넣습니다만 스스로 별도의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한, 개발 인원이 기획자 1명, 프로그래머 1명, 아트 1명 정도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작은 회사에서는 라이브 서비스 유지만으로도 벅찬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프로그래머는 서버, 클라이언트, DB 할 것 없이 이것저것 다 조금씩 만져야만 됩니다. 좋은 점은 전체적인 서비스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주도적인 작업 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겠네요. 단점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토대가 있으므로 스스로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회사 업무만으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거나 더 도전적인 무언가를 해볼 기회가 없다는 거죠.


프로그래머에게 이 단점은 꽤나 크게 다가옵니다. 업무 난도가 낮아지고, 익숙해질수록 편해지지만 경력은 쌓여가는데, 경험은 쌓이질 않죠. 그 회사의 서비스에 대한 경험만 쌓여갈 뿐입니다.


새로운 도전


그러는 찰나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자신의 회사 내에서 별도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기존 다니던 회사가 회사 총인원이 15명 남짓인데 반해 제안이 온 회사는 직원만 200명가량이 되었죠.

연봉도 살짝 오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있던 저는 이직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3개월 뒤, 퇴사를 결심합니다.


girl-6624686_1920.jpg


그 이유는 회사 분위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게임업계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업계에 비해 젊은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된 회사에 다녔었죠. 그런데 이번에 들어간 회사는 게임업계가 아니다 보니 기존의 경직된 조직 체계가 필자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습니다. (게임 업계는 아니지만 프로젝트가 게임 엔진을 쓰는 상황이긴 합니다.)


하나의 일화를 얘기하자면 사무실을 새로 얻게 되어 자리를 배치하는 날이었습니다.

필자는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은 상사의 자리를 챙겨주는 게 크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엄연히 따지자면 공평해야 한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크게 따지기보다는 뭐 어디에 앉던 상관없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애초에 사무실 인원들이 예전에 알던 형, 동생 사이인 회사였기에 더 그렇기도 합니다.


이제 자리를 결정할 시간이 왔습니다. 모두들 가장 상사에게 햇빛이 잘 들어오고, 화면이 남들에게 안 보이는 자리를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상사는 가위바위보로 공평하게 1등부터 고르기로 하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가위바위보. 결과는 필자의 1등. 이야기를 꺼낸 상사는 3등!!

사실 이때부터 다른 직원들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굳이 눈치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필자는 당연히 제일 좋은 자리를 고르게 됩니다. 이어서 2등을 한 직원이 눈치껏 3번째로 좋은 자리를 고르고, 3등 한 상사가 그나마 2번째 좋은 자리를 선택하게 됩니다.


뭐 딱히 저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은근하게 눈치를 주면서, 필자가 제일 좋은 자리를 고를 줄 몰랐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눈치 없는 녀석.이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가 영 껄끄러웠습니다.

대놓고 형 대접을 해달 라라는 분위기라면 오히려 다들 친한 형들이고, 애초에 높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필자는 더 대접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라며 평등한 척, 열린 마인드인 척하고서는, 암묵적으로 대접을 받길 바라고, 그에 맞춰 대접을 해주는 이면적인 분위기가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술자리 역시 이런 분위기가 더 강했는데, 기존 회사는 선약이 있으면 참석 못하기도 하고, 술 먹다가 상사랑 티격태격 말다툼도 할 정도로 분위기가 편했던 반면, 이 회사는 상사가 오늘 다른 약속 없지?라는 말이 떨어지면 있던 약속도 취소를 해야 하고, 술자리에서도 열심히 맞장구치면서 상사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drunk-1013965_1920.jpg


이런 경직된 분위기에 지친 필자는 3개월 만에 회사를 떠나고, 결국 원래 있던 회사로 리턴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전 회사에서도 다시 올 수 있으면 와줬으면 좋겠다고 요청이 왔기 때문이었죠.


모두 이전 이야기이고, 몇 년이 더 지난 후 다시 전 이직을 해서 지금은 또 다른 직장을 다니지만 그 후로 회사 내 분위기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봅니다.


좋은 분위기, 좋은 직장 문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냥 모두가 동등한 분위기?

아니면 1인 지휘 아래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체제?

직장 동료 간 모두가 친구처럼 어울려 놀기도 하면서 함께 일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회사?

회사는 회사. 사생활은 사생활. 딱 나눠서 퇴근과 동시에 남이 되는 분위기의 회사?


어떤 회사는 회식이 너무 없다고 직원들이 아쉬워합니다.

어떤 회사는 회식이 없어서 칼퇴가 너무 좋다고 직원들이 좋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들 제각각 생각이 다르고, 성향도 다릅니다.

그렇다고 성향이 다른 일부를 무시할 수는 없겠죠.

여러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관리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의도를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직원들에게 서운할 수도 있고, 마음먹은 대로 조직이 굴러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관리자는 노력해야 합니다.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그게 관리자의 역할이고, 관리자로써 대우를 받는 이유이기 때문이죠.


필자는 관리자였다가 개발자였다가 회사에 따라 업무에 따라 변하고 있지만, 언젠가 가야 할 위치라면 미리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meeting-1453895_1280.png


필자가 되고 싶은 관리자는 막혀있지 않은 관리자입니다. 팀원들과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고, 결정 과정에서 이해 못 할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좋은 것만 보여줄 순 없겠죠. 그때 팀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관리자.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지 않는 관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