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더 사랑해줘.
쟤는 아무것도 안하는데, 나보다 더 사랑받고 있잖아?
쟤는 뭔데 공짜로 사랑받아? 화가 난다!"
어린시절 예쁜 사촌언니와 가깝게 지내며 괴로워했던 내 어린 속마음을 풀어보면 그랬다. 나는 애써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사촌언니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가족과 주변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아무 노력없이, 더 많이 받고 있었다. 그냥 아름답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말이다. '노력없이 거저 얻는다', 이것이 열등감 속에 담긴 억울함과 분노였고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졌다'는 것이 열등감 속에 담긴 질투였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외모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중 하나일 뿐이고 생각보다 상대적이고 지속성이 길지도 않다는 걸 알게됐다. 또 '가치의 등가교환 사회'를 뼛속까지 이해하게 됐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내놓기 위해 계속 애써야 하는 것은 예쁘고 못난 모든 인간의 숙명이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타인에게, 조직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경험들을 쌓으며 나름 건강한 자기가치감과 자존감을 축적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을 훌쩍 넘어서도 예쁜 외모의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는 초라해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 외모 열패를 자각하고 내 존재의 열패감까지 느껴버린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저 화사한 인물의 등장이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얼굴이 안 좋아졌다거나 피곤해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도 필요 이상으로 불쾌했다. 나의 값어치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억울해진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다 상담심리 공부를 하면서 또 여러 유튜브를 접하면서 깨달았다. 나의 외모 열등감 안에는 분노, 질투,억울함보다 더 핵심적인 두 가지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한 가지는 부끄럽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였다. 노력 안해도, 가지면 더 좋을 것을 못 가졌어도, 못생기고 부족함 투성이여도,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괜찮다는 아주 근원적이고 뿌리깊은 안정감에 대한욕구기도 했다. 어쩌면 아름다운 지인들의 겉모습보다그 근원적인, 천연의 자신감에 나는 더 주눅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 가지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외모 때문에 부정당할까 지레 벌벌떨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상대가 나를 못생겼다고 평가하며 싫어하거나 거절하고, 내 존재가 원래보다 평가절하 받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사람과 처음 안면을 틀 때 너무 긴장하거나 외모에 대한 평가에 민감해지는 건 당연했다.